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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왜 우리는 건축과 불화하는가
오늘날 건축계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분열이 있다. 이는 단순히 양식의 차이가 아니라, ‘건축(Architecture)’이라는 이상과 ‘건물’이라는 현실 사이의 깊은 골이다. 한편에는 서구에서 발원하여 수 세기에 걸쳐 정립된 자기참조적 지식 체계, 즉 ‘디서플린(Discipline)’으로서의 건축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는 우리 삶의 99%를 차지하지만 그 디서플린의 관심 밖에 놓인, 이름 없는 건물들의 방대한 현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디서플린의 언어로 훈련받았으나 건물의 현실에 복무해야 하는 ‘건축가’의 고뇌가 자리한다.
이러한 분열은 건축가와 대중 사이의 오랜 불화로 이어진다. 건축가는 자신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탓하고, 대중은 현실과 동떨어진 건축가의 권위주의에 괴리감을 느낀다. 본고는 이 구조적 문제를 해부하고, ‘건축’을 하나의 특정 문화 ‘장르’로 재정의함으로써 ‘건물’의 현실을 책임질 새로운 전문가의 등장을 촉구하고자 한다. 이는 단절이 아닌, 각자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 분리이자 새로운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제안이다.
1부. ‘건축’이라는 자율적 세계
1.1 디서플린의 기원: 형태를 향한 오랜 집착
서구 건축의 본질, 즉 디서플린은 태생적으로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점보다 건물에 투영될 형태의 질서에 더 깊은 관심을 두어왔다.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건축을 사회적 선을 증진시키는 비-모방적 예술로 옹호했는데, 이는 건물이 직접적 유용성이 아닌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가 주는 질서를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건축가의 계획을 ‘형상인(formal cause)’으로 규정하며, 물질적 현실보다 추상적 아이디어의 우위를 공고히 했다.1 이러한 철학적 DNA는 건축이 사용자의 편의나 현실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형태 논리를 추구하는 오랜 역사의 토대가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경향은 ‘자율적 건축(Autonomous Architecture)’이라는 이름 아래 극단으로 치닫는다.2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으로 대표되는 이 흐름은 건축을 사회, 정치, 기능 등 모든 외부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담론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2 그의 악명 높은 ‘하우스 VI(House VI)’는 식탁을 기둥이 관통하고 부부의 침대를 유리 띠가 가로지르는 설계를 통해, 인간의 편의보다 디서플린의 내적 논리가 어떻게 우위에 서는지를 극적으로 증명했다.2 디서플린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증식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비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1.2 현대건축의 놀이: 알리바이와 결과물의 분리
오늘날 순수한 형식주의만으로는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의 ‘고급 건축’은 일종의 정교한 놀이, 즉 ‘그럴싸한 결과물(미학적 형태)’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그럴싸한 알리바이(개념적 서사)’를 구축하는 게임이 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결과물과 알리바이가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않으며, 종종 그 연결고리는 사후에 구성되거나 ‘억지’스러운 지점이 발생한다.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이 역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4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날카로운 사선과 파편적인 조형 언어는 이 프로젝트 이전부터 존재해 온 형태적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4 여기에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 역사를 기념하는 프로그램이 이식되면서, 건축가의 기존 조형 언어는 강력한 역사적 알리바이를 획득했다. 리베스킨트는 깨진 다윗의 별, 쇤베르크의 미완성 오페라 등 다양한 외부의 서사를 설계의 근원으로 제시했지만5, 비평가들은 그의 ‘수다스러운 의도성(garrulous intentionality)’을 지적하며 형태와 서사 사이의 인위적인 결합에 의문을 제기했다.7 이는 건축가가 자신의 조형적 결과물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알리바이가 유일하거나 최적의 독해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알리바이는 디서플린의 자율적 세계와 대중의 이해 사이를 잇는 필연적인 소통 전략이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허구의 틈이 발생한다.
2부. ‘건축가’의 딜레마와 한국적 왜곡
2.1 디서플린의 역설
디서플린을 기반으로 한 건축 교육 시스템은 ‘건축가’에게 근본적인 역설을 안겨준다.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디서플린이라는 전문 언어를 습득하고 구사할 줄 알아야 기성 건축계와 소통하고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건축가는 디서플린 바깥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대다수 현실 공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건축가와 대중 사이의 깊은 골을 만든다. 학문적 이상으로 훈련받은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디자인 언어를 현실에 적용하려 하지만, 수요자들은 그것을 비싸고, 권위적이며, 실용적이지 않다고 느낀다.10 결국 건축가는 자신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탓하고, 대중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건축가를 외면한다.12 이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사이, 도시의 대부분을 채우는 공간들은 전문가의 책임 있는 개입 없이 처참한 수준으로 양산된다.
2.2 한국 건축계의 알리바이: ‘유사 인문학’과 노출 콘크리트
이러한 디서플린의 딜레마는 한국의 특수한 근대화 과정 속에서 더욱 기이한 형태로 왜곡되었다. 한국 기성 건축계는 서구 디서플린의 복잡한 조형 지식 체계 대신, ‘건축가는 작가’라는 권위적 태도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자리를 ‘윤리로 포장한 위선’, 즉 ‘유사 인문학’으로 채워 넣었다.
건축가 승효상으로 대표되는 ‘빈자의 미학’은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3 본래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담은 이 철학은, 현실에서는 특정 미학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도덕적 알리바이로 기능했다.14 건축가의 철학적 의도와 무관하게, ‘가난할 줄 아는 삶’이라는 윤리적 명제는 때로 사용자의 실질적인 편의나 욕구와 상충하는 디자인을 정당화하는 권위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이 알리바이는 ‘원재료 노출 마감의 육면체 조립’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단순화된 미학적 결과물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본래 저비용을 위해 사용되기도 했던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더 비싼 시공이 되는 역설 속에서, 이 미학은 복잡한 이론 없이도 건축가의 진지함과 권위를 손쉽게 드러내는 시각적 기호가 되었다. 결국 한국의 기성 건축계는 ‘윤리적 알리바이’와 ‘미니멀한 조형’이라는 편리한 패키지를 통해 디서플린의 권위를 수행했지만, 이는 대중과의 소통을 더욱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부. ‘건물’의 현실과 새로운 전문가의 필요성
3.1 건축의 바깥, 삶의 공간
‘건축(Architecture)’이 서구에서 발전한 특정 지식 체계, 즉 하나의 문화적 장르라고 규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건축의 바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태초에 한국에는 서구적 의미의 ‘건축’은 없었지만, 고유한 방식으로 공간을 다루는 지혜와 기술은 존재해왔다. 마찬가지로 현대 서울과 같은 도시 공간의 99%는 ‘건축’의 범주로 독해할 수 없는 자생적인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17
상가주택, 다세대주택, 이름 없는 근린생활시설 등. 이들은 도시의 중요한 구조를 이루고 대다수 시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지만, 건축 디서플린은 이들을 자신의 책임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다.19 기껏해야 현상적 흥밋거리로 잠시 주목할 뿐이다. 이 거대한 영역은 주인의식을 가진 전문가 없이, 오직 시공의 논리만으로 방치되고 있다.
3.2 장르의 분리가 필요한 이유
문제는 이 두 영역이 서로 뒤엉켜 있다는 데 있다. 디서플린의 훈련을 받은 건축가들이 현실의 건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지만, ‘좋은 공간’에 대한 판단 잣대가 수요자와 너무나 다르다.10 건축가는 학문적 이상을 현실에 직역하려 하고, 수요자는 괴리감을 느낀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두 영역 모두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장르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는 두 영역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음악계에 고유한 문법과 평가 기준을 가진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 공존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듯, 건축계에도 두 개의 전문 분야가 필요하다.
- ‘건축’ 장르의 전문가 (건축가): 문화적, 예술적 행위로서의 건축에 순수하게 집중한다. 이들은 사회의 모든 공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디서플린의 심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 ‘건물’ 장르의 전문가 (가칭: 공간조정가): 도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상적 건물의 질을 책임진다. 이들은 미학적 조형 실험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부동산 경제, 시공 기술, 지역의 법규와 생활 패턴 등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훈련받아야 한다.
이러한 분리를 통해 ‘건축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더욱 깊이 파고들 수 있고, 새로운 ‘공간조정가’는 현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방대한 건물의 영역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두 전문가는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 도시 공간의 총체적인 질을 향상시키는 건강한 공생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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