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비평의 난관과 '옳음'의 건축
시게루 반(Shigeru Ban)과 같은 건축가를 비평하는 것은 특정한 난관에 부딪힌다. 이는 프라이 오토(Frei Otto)나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를 순수한 건축의 관점에서 비평하기 어려운 것과 유사하다. 반이 긴자에 설계한 상업 건물과 같은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가 재난 현장에서 지관(紙管, paper tube)을 사용해 지은 건축물들은 기존의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미학적 판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존재한다. 이 어려움 자체가 시게루 반 건축의 핵심적 사실, 즉 그의 건축은 '옳다'는 명제를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미학이나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모더니즘의 핵심 강령이었던 '의식'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도시와 건축의 실패가 사회악의 근원이라 믿었듯, 시게루 반은 "사람들이 건물로 인해 죽고 있다"고 담담히 말하며 건축의 혁명을 통해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모더니스트의 사회적 책임을 계승한다. 이 보고서는 시게루 반의 작업을 '작품 활동'과 '사회적 참여'라는 이중적 구조로 분석하고, 이 두 축이 어떻게 그의 독창적인 '도덕적 합리주의'로 수렴되는지, 그리고 왜 그의 작업이 전통적인 건축 비평의 형식을 무력화하는 '반(反)건축'의 특성을 띠는지 논증할 것이다.
제1장 이중적 실천: 작가와 인도주의자
시게루 반 스스로가 설명하듯, 그의 작업은 '작가'로서의 미학적 탐구와 '참여자'로서의 인도주의적 실천이라는 두 개의 뚜렷한 축으로 나뉜다.
1.1 '작품 활동': 작가적 언어와 그 계보
그의 '작품 활동'은 알바 알토(Alvar Aalto) 전시회 인테리어 같은 초기 작업에서부터 뉴질랜드의 카드보드 대성당(Cardboard Cathedral)이나 프랑스의 상업적 랜드마크인 상트르 퐁피두-메츠(Centre Pompidou-Metz)에 이르기까지, 고도로 세련된 '작가적' 언어를 보여준다.
반은 자신의 스타일적 참조점이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의 존 헤이덕(John Hejduk), 그리고 리처드 노이트라(Richard Neutra)와 같은 '서부 해안 스타일'의 모더니스트들로부터 유래했다고 밝힌다. 헤이덕은 '뉴욕 파이브'의 일원으로서 건축의 형태 어휘 자체에 대한 시적이고 실험적인 탐구로 유명하며, 특히 헤이덕의 '종이 건축(paper architecture)' 개념은 반이 종이라는 재료의 구조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헤이덕이 교육에 도입한 '9그리드 문제(nine-square grid problem)'는 건축의 기본 요소(그리드, 프레임, 면, 볼륨)를 탐구하는 기본적인 훈련 방식이다.
캘리포니아의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산업적 미학을 토대로 하되, 기후와 문화에 조응하는 지역적 양식을 구축하려 했다. 이러한 배경은 반의 '작가적' 작업이 순수한 기하학적 유희와 재료의 물성 탐구, 그리고 서구 모더니즘의 계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1.2 '사회적 참여': 프라이버시라는 근본적 권리
반의 또 다른 축인 '사회적 참여'는 르완다 내전, 동일본 대지진, 아이티 대지진, 우크라이나 전쟁, 튀르키예 지진 등 전 세계의 비극의 현장을 대상으로 한다. 그는 NGO인 자발적 건축가 네트워크(VAN)를 설립하여 임시 주거와 공동체 시설을 공급해왔다.
이 활동의 핵심에는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기본 원리"라는 그의 신념이 있다. 재난 상황에서 프라이버시는 종종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지만, 반은 이것이 개인의 존엄성이자 정치적 행동의 기초임을 인지한다. 그는 재난 대피소의 열악한 환경이 거주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협하며, 특히 프라이버시가 없는 환경은 여성들이 대피소 입소를 꺼리게 만들어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종이 칸막이 시스템(Paper Partition System, PPS)'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건축적 응답이다. 종이 튜브와 천으로 만들어진 이 간단한 모듈형 시스템은 대피소 내부에 최소한의 개인 영역을 확보해준다. 이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제시하는 '광장(Gwangjang, 공적 영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밀실(Mil-sil, 사적 영역)'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변증법적 통찰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은 사회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최소한의 '밀실'을 제공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재난 이후 공동체 회복('광장')의 의지를 고양한다.
제2장 통일된 에토스: 합리성, 공학, 그리고 사랑
시게루 반의 천재성은 이 두 개의 분리된 듯한 실천('작품'과 '참여')을 하나의 일관된 윤리적, 방법론적 체계로 통합하는 데 있다.
2.1 글로벌 합리주의와 '형태 찾기'
반의 작업에서 '지역성'은 철학적 원인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그가 재난 현장에서 파벽돌, 플라스틱 상자, 혹은 종이 튜브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로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가장 '값이 싸고, 수급이 쉬우며, 다루기 편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철저한 글로벌 건축가이며, 가장 합리적인 것을 택하려는 그의 의지가 때로 지역적 재료의 사용으로 귀결될 뿐이다.
그의 미학은 '형태 만들기(form-making)'가 아니라 프라이 오토가 말한 '형태 찾기(form-finding)'에 가깝다. 그는 재료의 효율적 활용과 구조적 강성을 우선시하며, 목조 구조물을 보호하던 방수포를 더 가볍고 질긴 탄소 섬유로 대체하거나, 단일 목재보다 다루기 쉬운 합성 목재를 선호하는 등 부단한 '개선'을 추구한다. 그에게 미학은 '작가적' 표현이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공동체성'의 미학이다.
2.2 '작품'의 실험, '참여'의 적용
전형적인 건축가들이 사회적 참여 프로젝트를 자신의 작가성을 홍보할 기회로 삼는 것과 정반대로, 시게루 반은 자신의 '작품 활동'을 '사회적 참여'를 위한 실험장으로 활용한다. 그는 넉넉한 예산과 자유도가 보장된 상업 및 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평소 고민하던 재료, 구법, 형식을 실험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의 프로젝트를 통해 컨테이너 건축을 실험한 후, 그 노하우를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현의 임시 공동주택에 즉시 적용하는 식이다. '작가성'을 보고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인도주의적 실천을 위한 기술 개발의 장으로 삼는 이러한 태도는 그의 확고한 윤리적 에토스를 보여준다.
2.3 임시성과 영원성: "사랑받는 건축"
반의 건축은 '임시 건축'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건축의 영원성이 재료가 아닌 '사랑'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그 구조물을 사랑하는지 여부가 그것이 영구적이 될지를 결정한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사랑한다면, 종이라도 영구적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는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지어진 '종이 교회(Paper Church)'이다. 160명의 자원봉사자가 5주 만에 완성한 이 지관 구조의 임시 교회는, 10년 후 그 역할을 다하고 대만의 지진 피해 지역인 타오미 마을로 '이주'하여 영구적인 건축물로 기능하고 있다. 반대로 아무리 견고한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라도, 공동체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상업적 논리에 의해 쉽게 파괴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임시적'인 건축이다.
제3장 반(反)건축과 비평의 종말
시게루 반의 이러한 태도는 그를 전통적인 건축 비평의 장에서 벗어나게 한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사건에 대한 충실성(fidelity)'을 통해 사건의 의미가 사후적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듯, 반의 건축물은 그 자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1 형식 비평의 무력화
반의 건축은 그 건축물에 부여된 '맥락적 가치', 즉 에토스와 내러티브가 평가의 대상이 될 뿐, 형식적으로는 분석을 거절한다. 리미널 스페이스나 키오스크에 대한 형식적 분석이 얄팍해지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고베의 '종이 교회'를 순수한 조형물로 분석하는 것은 그 건물의 본질을 완전히 놓치는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게루 반의 건축은 진정으로 '파괴적'이다. 그는 건축의 약한 부분이 아니라 가장 강한 부분, 즉 '형식 비평'이라는 건축의 핵심 작동 기제를 파괴한다. 그는 건축을 짓거나 부수는 대신 '전개하거나 거두어들이고', 한 국가의 재난 대응 법규를 바꾸는(그의 종이 칸막이 시스템은 이후 일본 정부의 표준 재난 구호 물품이 되었다) 등, 건축의 정의 자체를 확장한다.
3.2 작가적 순진함: 비평의 잔여물
물론 시게루 반을 신화화할 수는 없다. 그의 '작가적' 작업 중 일부는 비평의 여지를 남긴다. 히로시마의 시모세 미술관(SIMOSE Art Museum) 프로젝트에서 나타나는 순진한 은유들—예를 들어 히로시마가 선박 제조 기술로 유명해서 배 모양을 고안했다거나, 특정 국가의 상징이 다섯 장의 꽃잎이어서 오각형 매스를 사용했다는 식의 접근—은 되새겨볼 가치가 없는 얄팍한 형식주의에 머무른다. 이는 그의 '사회적 참여' 작업이 보여주는 치열한 합리성과는 대조적이다.
결론: '옳은' 코스모폴리탄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게루 반은 오늘날 우리가 기꺼이 준거로 삼아야 할 건축가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이라는 가치의 옳은 버전을 보여준다. 그의 건축은 세계시민을 위한 것이면서도 교훈적이거나 오만하지 않고, 인류애적이지만 공을 가로채려 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로컬하지만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으며, 값싸고 임시적이지만 견고하고 깨끗하다.
그의 건축이 비평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그의 작업이 미학적 판단의 영역을 넘어 보편적 가치와 공동선이라는 도덕적 당위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게루 반의 건축은 모더니스트의 의식과 엔지니어의 형식을 함께 갖춘 진정한 합리주의자의 초상이며, 어떤 건축은 '비평'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되어야 할 낡은 관습에 맞서기 위해 존재함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