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밀물과 껍데기: PropTech의 현주소와 본질의 부재

1.1. 서론: '물이 들어올 때'의 역설
최근 몇 년간 건축 및 부동산 산업은 '물이 들어오는' 시기, 즉 코로나 특수와 같은 거시적 환경 변화와 기술적 기회가 맞물린 변곡점을 맞이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PropTech(프롭테크) 분야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을 해결할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접근이 과연 산업의 본질적인 '내면'을 강화하고 있는가, 혹은 밀물을 타고 피상적인 '껍데기'를 바꾸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가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반응적 기회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스페이스워크(Spacewalk)와 그 핵심 서비스인 랜드북(Landbook)을 들 수 있다. 스페이스워크는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부동산 시장을 혁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PropTech 스타트업이다. 랜드북의 비즈니스 모델은 "AI 건축설계 및 부동산 가치평가 기술"을 통해 "토지와 건물의 가치를 예측"하고 , "최적의 수익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명확한 '스콥의 한계(Scope Limitation)'를 보여준다. 랜드북의 AI는 "토지 가치의 최대화(maximization of land value)" 와 "예상 수익률 예측" 을 핵심 목표로 삼는다. 이는 특히 "서울 토지의 90%"를 차지하지만 "산업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개발이 어려운"  200평(660 제곱미터) 미만의 소규모 토지 시장의 '비효율성' 을 해결하는 데 집중된다. 즉, 랜드북의 AI 엔진(LBDeveloper) 이 수행하는 '건축설계 자동화'란, "다양한 건축 법규를 반영"하여  "허용 가능한 건물 외피를 계산"하고  "수익성" 을 검토하는 작업이다. 이는 건축의 복잡다단한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법규 검토와 최대 용적률 산정이라는 매우 명확하게 '길들여진(tame)' 문제를 푸는 데 한정된다. 

1.2. '수제 맥주' 비유의 해부: 피상적 자동화
이러한 현상은 "일반 맥주의 껍데기만 수제 맥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은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맥주 산업에서 양조장의 "몸집이 커질수록", 즉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수록, "맥주를 다루는 사람"(본질)과 "기계를 다루는 사람"(프로세스)이 분리되고, 생산은 "설비와 품질 위주의 프로세서"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수제(craft)'라는 단어는 본질적 차별성이 아닌, "스토리를 더욱 쌓아가는 '해명과 창작'" 의 영역, 즉 마케팅과 브랜딩의 영역으로 전락한다. 
PropTech의 '껍데기(Wrapper)'는 "건축의 대중화(Mass Customization)" 와 "99%를 위한 건축" 이라는 매력적인 '스토리'다. 이는 '수제 맥주'라는 라벨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그 내부의 '엔진(Engine)'은 법규 와 수익률 에 기반한 지극히 '기계적인' 프로세스다. PropTech는 '맥주를 다루는 사람'(본질적 건축가)의 창의적 작업을 자동화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기계를 다루는 사람'(효율화 및 품질 관리)의 작업, 즉 가치 평가와 법규 검토만을 고도화하고 있다. '크래프트'의 핵심이어야 할 건축적 본질과 창의성은 이 방정식에서 부재한다. 

1.3. '내력(內力)'을 향한 호소: 반응이 아닌 구축
따라서 "물이 들어오기 전에 내면을 키워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틴다"는 주장은 이러한 피상적 자동화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다. 여기서 '내력(Naeryeok, Inner Strength)'은 구조공학에서 차용한 용어로, 외부의 '물결'(시장 수요, AI 기술 유행)에 휩쓸려 수동적으로 '반응(reacting)'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외압에도 견딜 수 있는 '본질적 역량'을 선제적으로 '구축(building)'해야 함을 의미한다.
본 보고서는 이 '내력'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축의 '내력'이란, 현재의 PropTech가 회피하고 있는 건축 고유의 '모호성(ambiguity)'을 다루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 모호성을 '절차적(procedural)'이고 '시스템적(systemic)'으로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이야말로 건축이 AI 시대의 조류 속에서 버티고 나아가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유일한 '내면 강화'의 길이다.


Part 2. 근본적 진단: 건축의 모호성과 문화적 임피던스

2.1. '불친절한 업계': 모호성이라는 성채
건축이 '불친절한 업계 2위'로 지목되는 이유는, 업계가 "모호한 말들 뒤에 숨어"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의도적인 장벽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이 모호성은 특히 건축 교육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주입된다. 교육 현장에서는 "구체적으로 건축을 어떻게 만드는지"(재료, 크기, 색상, 빛의 결정 원리)를 알려주기보다, 교수의 주관적 판단인 "아니래"(틀렸다)라는 피드백이 반복된다.
이러한 교육 방식의 핵심에는 '크리틱(Critique)'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건축 스튜디오의 크리틱은 교육의 중심적 방법론이지만, "모호하거나 취향 중심적(vague or taste-driven)" 으로 변질되기 쉽다. 비평 패널은 종종 "취향에만 근거한(based on taste alone)" 주관적 발언 을 쏟아내며, 이는 학생들에게 '방법론'이 아닌 특정 '취향'을 강요하는 "심판적(judgmental)" 행위('wrong', 'bad', 'rubbish') 가 된다. 
의 자기 고백적 연구는 이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한 건축학도는 "평범하고 지루한(ordinary and boring)" 자신의 가족이 사는 집을 "미스 반 데어 로에-심플하지 않다"는 이유로 의문시하기 시작한다. 그는 "비율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멀쩡한 박공지붕을 평지붕으로 바꾸자고 부모를 설득하며, "나의 취향, 언어, 행동이 변하고 있다... 건축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들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이는 건축 교육이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보편적 선호도'를 "낮추고" ,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간극을 만드는 패턴" 을 주입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교육은 "재료, 크기, 색상, 빛"과 같은 '기초(fundamentals)'  대신, "모더니스트 혁신" 과 같은 특정 스타일을 배타적 '취향'의 언어로 체화시킨다. 이 '모호성'과 '배타성'이 바로 건축 업계가 구축한 성채의 실체이다. 

2.2. 문화적 임피던스 불일치 (The Cultural Impedance Mismatch): 건축가 vs. 코더
건축계에 내재된 이 모호성은 "건축과 코더들의 백그라운드가 너무 달라서 이어지기 어렵다"는 '문화적 임피던스 불일치(Cultural Impedance Mismatch)'의 근본 원인이다. "건축가들은 input을 정확히 정의 못한다"는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임피던스 불일치'는 본래 소프트웨어 공학의 용어다. 개발자 커뮤니티와 데이터 전문가 커뮤니티 간의 "문화적 임피던스 불일치"는 "서로 다른 기술, 다른 배경, 다른 사고방식(Ways of Thinking, WoT), 다른 작업 방식(Ways of Working, WoW)" 에서 기인하는 "비기능적 정치"와 "어려움"을 의미한다. 
이 불일치는 건축 분야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컴퓨테이셔널 디자인(Computational Design)과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과 같은 현대적 도구들은 "매우 잘 정의된(굉장히 잘 디파인 된)" 데이터를 요구한다. BIM은 "실제 건물 요소, 예컨대 건축 자재 및 성능 데이터" 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생성 디자인(Generative Design)은 "정의된 제약 조건(defined constraints)" 과 "사용자 정의 입력(user-defined inputs)" 을 전제로 한다. 시스템은 명확하고 정량화된 입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건축가의 'Input'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다. 건축가들은 "의도와 디자인을 연결하기 위해 단어와 예술의 그래픽 언어에 의존"하며 , 그들이 다루는 핵심 디자인 요소는 "내러티브, 형태, 기능, 다중감각적 접근, 물질성, 공간"  등이다. 이는 컴퓨테이셔널 시스템 입장에서는 "모호한 범위 정의(ambiguous scope definitions)" 에 불과하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인식론적 단절(Epistemological Chasm)*이다. 건축 교육 은 '모호함'과 '주관적 취향'을 전문가의 핵심 역량으로 훈련시킨다. 반면, 컴퓨테이션 은 '명확하게 정의된 입력값'을 절대적 전제로 삼는다. Spacewalk와 같은 PropTech 는 이 단절을 해결하려 시도하는 대신, 건축가의 모호한 입력을 무시하고 법규와 수익률이라는 명확한 입력값만으로 작동하는 쉬운 길(껍데기)을 택했다. 이것이 바로 진단된 '스콥의 한계'의 본질이다. 


Part 3. '내력' 구축을 위한 이론적 토대: 건축의 절차적 역설계
건축의 '내력'을 구축하는 것은 이 모호성을 해체하고, 건축적 사유를 절차적(procedural)이고 시스템적(systemic) 언어로 재정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방법론적 도구들은 이미 건축 이론의 역사 속에 존재해왔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루돌프 비트코워, 피터 아이젠만, 리처드 세라의 작업은 '내력'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3.1. 생성 문법 (Generative Grammar):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Alexander & Chomsky)
건축을 '규칙 기반(rule-based)' 시스템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시스템 생성 시스템(Systems Generating Systems)' 에서 정점에 달한다. 알렉산더는 "전체로서의 시스템"(System as a whole,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생성 시스템"(Generating system)을 명확히 구분한다. 그에게 "생성 시스템"이란 "부품들의 키트(a kit of parts)와 이 부품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대한 규칙들(rules)"의 집합이다. 
알렉산더의 "관계형 메소드"와 조지 스티니(George Stiny)의 "형태 문법(Shape Grammars)" 은 "은유가 아닌 실제 생성 엔진(generative formal engine)"이다. 이 접근은 촘스키(Noam Chomsky)의 "생성 문법(Generative Grammar)" 과 맥을 같이 한다. 촘스키의 문법이 유한한 "논리적 규칙"을 통해 "무한한 수의 가능한 문장"을 생성하듯, 'Shape Grammar'는 건축 디자인을 생성하는 구문론적 규칙을 정의한다. 이는 '취향'과 '아니래'라는 주관적 피드백으로 점철된 건축 교육의 모호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절차적 해독제다. '내력'의 첫 번째 요소는 디자인을 '생성하는 규칙'을 명시적으로 정의하는 능력이다. 

3.2. 형식과 비율 (Format and Ratio): 루돌프 비트코워 (Wittkower & Palladio)
루돌프 비트코워(Rudolf Wittkower)가 '인본주의 시대의 건축 원리' 에서 수행한 팔라디오(Palladio)의 빌라 로툰다(Villa Rotonda) 분석은 개별 '오브제(object)'를 '시스템(system)'으로 해독한 선구적인 작업이다. 비트코워는 팔라디오의 빌라들을 "추상적 도식(abstract schemes)" 과 "기하학적 선점(geometrical preoccupations)" 의 체계로 분석했다. 
그는 팔라디오의 "직사각형 평면의 비율(ratios)"이 "음계(musical scales)" 라는 수학적 원리로 설명될 수 있음을 밝혔으며, 팔라디오가 "각 방 내부뿐만 아니라 방과 방 사이의 관계에서도 조화로운 비율을 사용" 했음을 증명했다. 
이 분석은 "같은 format(형식)인데 ratio(비율)가 다른 것"이 "parametric design"이라는 현대적 통찰과 정확히 일치한다. 비트코워의 분석 은 파라메트릭 디자인의 원형(prototype)을 역설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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