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의미의 과잉과 표면의 귀환
1.1 해석의 폭력과 현대 건축의 위기
20세기 중반,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그녀의 기념비적인 에세이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1964)를 통해 서구 지성사를 지배해 온 ‘내용(content)’ 중심의 예술관에 대해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했다. 그녀는 해석이라는 행위가 예술 작품의 감각적 즉물성을 파괴하고, 그것을 지적 범주로 환원시키려는 "지성의 복수"라고 규정했다.1 반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 2020년대의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고밀도 도시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은 손택의 이러한 외침이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강력한 유효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하이퍼스팬드럴(Hyper-spandrel)'이라는 도발적인 명칭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건축적 경향은, 건축을 무거운 이데올로기나 심오한 철학적 텍스트로 읽어내려는 기존의 '해석학적' 관습을 거부하고, 건축의 표면(surface)과 외피(skin), 그리고 그 속에 내재된 '스타일' 자체를 옹호하는 급진적인 태도를 취한다.
본 보고서는 수전 손택의 두 가지 핵심 텍스트인 『해석에 반대한다』와 『캠프에 관한 단상(Notes on "Camp")』을 이론적 렌즈로 삼아, 전재우(DCA/이디디에이)를 필두로 한 한국의 '포스트-크리티컬(Post-critical)' 건축 담론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우리는 여기서 건축이 어떻게 '의미'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꾸며낸 실재(Fabulated Reality)'로서의 가벼움과 위트, 그리고 '캠프(Camp)'적 감수성을 획득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건축 양식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현대 사회가 물질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술(건축)이 생존하고 저항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다.
1.2 하이퍼스팬드럴: 잔여물의 격상
'하이퍼스팬드럴'은 현대 상업 건축, 특히 커튼월(Curtain Wall) 시스템에서 구조체와 창호 사이를 메우는 비내력 패널인 '스팬드럴(Spandrel)'을 건축적 표현의 주연으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한다.3 전통적인 모더니즘 건축에서 스팬드럴은 가능한 한 숨겨지거나, 유리의 투명성을 가장하여 연속적인 매끄러움을 연출하기 위한 부차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전재우와 같은 건축가들은 이 '숨겨진 틈'을 과장하고, 장식하고, 비틀어냄으로써 건축의 표면을 하나의 거대한 수사학적 장치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손택이 『캠프에 관한 단상』에서 정의한 "부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사랑", "기교와 과장"4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하이퍼스팬드럴은 건물의 기능이나 구조적 진실을 드러내는 '정직한' 건축이 아니라, 상업적 외피라는 가면을 쓰고 그 가면의 인위성을 극대화하여 즐기는 '캠프적' 건축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건축적 실천이 단순한 형태 유희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도시 환경의 모순을 '이중 코드(Double Code)'를 통해 돌파하려는 고도의 지적 전략임을 논증할 것이다.
| 분석 차원 | 수전 손택의 미학 (1960s) | 한국 현대 건축 담론 (2020s) |
| 핵심 텍스트 | 『해석에 반대한다』, 『캠프에 관한 단상』 | 『건축은 꾸며낸 실재』, '그들의 이중코드' |
| 거부 대상 | 해석학, 내용 중심주의, 도덕적 엄숙주의 | 비평적 건축(Critical Architecture), 이데올로기, 진정성 |
| 지향점 | 예술의 에로틱스, 투명성, 감각적 경험 | 하이퍼스팬드럴, 수사학(Rhetoric), 표면의 유희 |
| 태도 | 진지함의 실패, 인위성 옹호 (Camp) | 쿨한 수행(Cool Performance), 시스템의 수용과 풍자 |
2. 수전 손택의 미학적 전회: 해석학에서 에로틱스로
2.1 해석이라는 이름의 폭력: 미메시스 이론의 해체
손택의 미학적 혁명은 서구 예술론의 기저에 깔린 '미메시스(mimesis, 모방)'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서 출발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예술은 현실의 모방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술 작품은 언제나 '형식(form)'과 '내용(content)'으로 분리되어 인식되었다.2 손택에 따르면, 이러한 이분법은 필연적으로 "내용이 본질적이고 형식은 부수적"이라는 인식을 낳았고, 이는 해석가가 작품의 외피(형식)를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의미'(내용)를 채굴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냈다.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라고 일갈한다.1 그녀가 말하는 해석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X는 사실 A를 의미한다"라고 번역하는 환원주의적 행위다. 이는 프로이트적 해석(모든 것을 성적 상징으로 환원)이나 마르크스주의적 해석(모든 것을 사회적 투쟁으로 환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손택은 이러한 해석이 현대 문화의 감각적 과잉 속에서 우리의 신경을 무디게 하고, 예술이 가진 즉물적이고 마술적인 힘을 거세한다고 비판한다.6
건축적 맥락에서 이는 1970-80년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나 케네스 프램튼(Kenneth Frampton)이 주도한 '비평적 건축(Critical Architecture)'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 비평적 건축은 건물을 통해 건축의 문법을 해체하거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텍스트로서의 건축을 지향했다.8 그러나 손택의 관점에서 볼 때, 건물을 텍스트로 읽으려는 시도는 건물의 물리적 실재성, 즉 콘크리트의 차가움이나 유리의 반짝임을 '의미'의 하위 범주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2.2 예술의 에로틱스: 감각의 회복과 투명성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에로틱스다(In place of a hermeneutics we need an erotics of art)."1 손택의 이 유명한 결구는 단순히 지성을 거부하고 본능에 탐닉하라는 쾌락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그녀가 말하는 '에로틱스'는 작품의 형식적 요소들이 뿜어내는 강렬함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감각의 예리함'을 의미한다.
손택은 비평의 목표가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작품이 어떻게 그 자체가 되는지, 심지어 그것이 그 자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9 여기서 핵심 개념은 **'투명성(Transparence)'**이다. 투명성은 사물의 반짝임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 즉 사물 자체의 광휘를 목격하는 것이다.1
이러한 '에로틱스'의 개념은 후술할 하이퍼스팬드럴 건축가들이 건물의 표면을 다루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재우가 『건축은 꾸며낸 실재』에서 주장하듯, 현대 건축은 더 이상 거창한 '아이디어'를 강변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즉각적인 감각적 충격을 주는 '형식'과 '수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는 손택의 에로틱스론(論)의 현대적 변주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건물의 외피를 뚫고 들어가 구조적 진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외피 그 자체의 질감, 색채, 그리고 그것이 도시와 맺는 시각적 관계에 집중하며, 그 표면의 유희 속에서 건축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모색한다.
2.3 캠프(Camp): 인위성과 스타일의 승리
『해석에 반대한다』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부정의 미학이라면, 같은 해 발표된 『캠프에 관한 단상』은 '무엇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대한 긍정의 미학을 제시한다. 손택은 58개의 단상을 통해 '캠프'라는 난해한 감수성을 정의하며, 이를 "세상을 미적 현상으로 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규정한다.4
캠프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요약될 수 있다:
- 인위성에 대한 사랑: 캠프는 자연스러운 것보다 기교, 과장, 장식을 선호한다. 그것은 "역할을 연기하는 존재(Being-as-Playing-a-Role)"에 대한 긍정이다.4
- 진지함의 실패: 순수한 캠프는 진지하려고 노력했으나 과도한 열정으로 인해 실패한 것들(예: 아르누보 램프, 1920년대 플래퍼 드레스)에서 발견된다.12
- 내용에 대한 스타일의 승리: 캠프는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대상의 '스타일' 자체를 향유한다. 이는 비극보다는 아이러니를, 내용보다는 형식을 우위에 두는 태도다.11
- 따옴표 안의 세상: 캠프는 사물을 "건물"이 아니라 "'건물'"로 본다. 즉,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연극적 대상으로 인식한다.13
하이퍼스팬드럴은 현대 건축에서 가장 강력한 캠프적 제스처 중 하나다. 전재우와 DCA의 작업에서 스팬드럴은 단순히 층간을 가리는 기능적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과장되고, 확대되고, 때로는 엉뚱한 재료로 치장되어 건축의 전면에 나선다. 이는 상업 건물의 전형성을 그대로 따르는 척하면서(Code 1), 동시에 그 전형성을 과도하게 연기함으로써 비틀어버리는(Code 2) 캠프적 전략이다.
3. 탈비평적 전회(Post-critical Turn)와 한국 건축의 수용
손택의 미학이 1960년대 뉴욕의 예술계를 뒤흔들었다면, 2000년대 초반 미국 건축계를 강타한 것은 '포스트-크리티컬(Post-critical)' 담론이었다. 이 담론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손택의 이론이 어떻게 2020년대 한국의 하이퍼스팬드럴과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핵심 고리다.
3.1 비평적 건축의 교착 상태
1980-90년대 건축 이론의 주류는 피터 아이젠만과 K. 마이클 헤이즈(K. Michael Hays)로 대표되는 '비평적 건축'이었다. 이들은 건축이 자본주의 문화 산업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고 믿었다. 비평적 건축은 형태를 통해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거나, 기존의 건축 문법을 해체하는 '어려운(hot)' 건축을 지향했다.8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버트 소몰(Robert Somol)과 사라 와이팅(Sarah Whiting)은 이러한 비평적 태도가 일종의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비평적 건축은 '저항'이라는 명분 아래 건축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고, 대중과의 소통을 단절시킨 채 학문적 게토(ghetto) 안에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3.2 도플러 효과: 쿨(Cool), 대기(Atmosphere), 투사(Projective)
소몰과 와이팅은 그들의 기념비적 에세이 『도플러 효과와 모더니즘의 다른 분위기들(Notes around the Doppler Effect and Other Moods of Modernism)』(2002)에서 '비평적(Critical)' 건축 대신 '투사적(Projective)' 건축을 제안한다.15 이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건축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 Hot vs. Cool: 뜨거운 논쟁과 변증법적 저항 대신, '쿨'하고 무심하며 유연한 태도를 지향한다. 이는 맥루한이 말한 '쿨 미디어'이자, 손택이 언급한 '새로운 감수성'과 직결된다.17
- Indexical vs. Atmospheric: 건축이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상징하는 기호(index)가 되는 대신, 특정한 분위기(atmosphere)나 효과를 만들어내는 수행적 장치가 되어야 한다.17
- 저항 대신 서핑(Surfing): 자본주의 시스템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그 시스템의 힘을 이용하여 새로운 현실을 '투사'하고 기획하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흥미로운 점은 소몰과 와이팅이 자신들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수전 손택을 직접적으로 인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주장한 "해석학 대신 에로틱스"를 "비평 대신 투사"로 치환하며, 건축이 도덕적 판단(비평)보다는 미적 취향(taste)과 감각(sensibility)을 통해 작동해야 함을 역설한다.19 이는 손택이 "취향은 모든 자유로운 인간 반응을 지배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며, 건축가들에게 '비평적 의무감'에서 벗어나 '미적 자유'를 허락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3.3 한국적 맥락: 이데올로기 과잉에 대한 반작용
이러한 포스트-크리티컬 담론은 201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한국 건축계는 오랫동안 김수근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한국성' 담론이나, 4.3 그룹(승효상, 배형민 등)이 주도한 '빈자의 미학'과 같은 윤리적, 이데올로기적 무게감에 눌려 있었다.3
전재우를 포함한 1980년대생 건축가들은 이러한 '엄숙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서구(주로 미국 동부)에서 유학하며 포스트-크리티컬 담론을 체화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마주한 것은 고도로 상업화된 도시 서울의 '혼종적' 현실이었다. 이들에게 '건축적 진실'이나 '도덕적 저항'은 공허한 구호처럼 느껴졌다. 대신 그들은 서울의 빌라, 상가, 커튼월 오피스 등 '저속한' 도시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유희적인 '수사학'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바로 하이퍼스팬드럴이 탄생하게 된 한국적 토양이다.
4. 하이퍼스팬드럴: 꾸며낸 실재로서의 건축
4.1 이론적 토대: 『건축은 꾸며낸 실재』
하이퍼스팬드럴 담론의 이론적 구심점은 강예린(SoA)이 저술하고 박해천 등이 비평적으로 논의한 책 『건축, 전(全) - 꾸며낸 실재(Architecture as Fabulated Reality)』(2020)에 있다.3 이 책은 건축이 더 이상 사회를 구원하는 도구나 거대 담론의 실천장이 아니라, 건축가 개인이 구축한 논리적 서사, 즉 '우화(fable)'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재우는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건축물은 100년을 가는 기념비가 아니라, 30년 정도 소비되고 사라지는 '소비재'이자 '서비스'임을 인정한다.20 이러한 '가벼운' 현실 속에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재료들을 재조합하여 그럴듯하고 매혹적인 '거짓말(fiction)'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꾸며낸 실재'는 손택이 말한 '인위성'과 '스타일'이 지배하는 세계와 완벽하게 겹쳐진다.
4.2 이중 코드(Double Code)와 이방인의 시선
전재우와 DCA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전략은 **'이중 코드(Double Code)'**다.3 찰스 젱크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하며 사용했던 이 용어는, 하이퍼스팬드럴 문맥에서 다음과 같이 재정의된다.
- 시스템의 논리 (The Dry Code): 자본주의적 건축 생산 시스템의 규칙을 철저히 따른다. 용적률을 최대화하고, 값싼 재료(알루미늄 패널, 페인트)를 사용하며, 시공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이는 비평적 건축가들이 거부하려 했던 '진부한 현실'이다.
- 수사학적 비틀기 (The Wet Code): 바로 그 시스템의 요소를 사용하여 시스템 자체를 조롱하거나 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스팬드럴을 과장하여 장식으로 만들거나, 싸구려 재료로 고전 건축의 패턴을 흉내 낸다. 이는 손택적 의미의 '캠프'이자 '위트'다.
전재우는 자신을 "캐나다인" 혹은 "이방인"으로 정체화하며, 이러한 위치가 한국의 도시 풍경을 낯설게 보고(defamiliarization), 그 속에서 이중 코드를 작동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3 이방인에게 서울의 무질서한 간판과 조악한 마감재는 불쾌한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텍스처'이자 '소스'가 된다.
4.3 프로젝트 분석 I: 신사 스팬드럴 (Sinsa Spandrel) - 과장의 수사학
DCA(이정우, 이동훈, 박성준)가 설계한 '신사 스팬드럴'(2024)은 하이퍼스팬드럴 개념을 물질화한 대표작이다.3 강남구 신사동의 상업 지구에 위치한 이 건물은 전형적인 임대 오피스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건축가라면 통유리 커튼월을 사용하여 스팬드럴(층간 벽)을 숨기려 했을 것이다. 모더니즘의 미학에서 스팬드럴은 구조적 순수성을 해치는 '불순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DCA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한다. 그들은 스팬드럴 부분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부풀리고, 장식한다.
- 재료와 디테일: 알루미늄 패널이나 복합 패널을 사용하여 스팬드럴의 두께감을 과시한다. 이는 기능적으로는 불필요한 행위지만, 미학적으로는 건물의 표면에 강력한 리듬과 표정을 부여한다.
- 캠프적 해석: 손택은 "캠프는 '스타일'을 내용보다 우선시하는 태도"라고 했다.11 신사 스팬드럴에서 '스팬드럴'이라는 기능적 요소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건물의 주인공인 양 행세한다. 이는 건물의 구성 요소가 연극적 배역을 맡아 과장된 연기를 하는 것과 같다. 전재우는 이를 두고 "스팬드럴의 매너리즘" 혹은 "허구적 수사"라고 평한다.3
- 물리적 흔적: 이 프로젝트는 매끈한 완결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시공 과정의 흔적이나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노출시키는데, 이는 '진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거친 질감 자체가 주는 시각적 쾌락을 위해서다.
4.4 프로젝트 분석 II: 광운 인테리어 (Indiscrete Kwangwoon) - 잔여물의 미학
전재우(이디디에이)의 '광운 인테리어'(2024)는 기존 건물의 '잔여물(residue)'을 다루는 방식에서 하이퍼스팬드럴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3
- 무의미한 것들의 보존: 리모델링 프로젝트인 이곳에서 전재우는 기존 공간에 남아 있던 낡은 배관, 뜯겨진 벽지, 정체불명의 구조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역사적 가치가 있어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그저 "무의미한 잔여물"이다.
- 발렌시아가적 키치(Kitsch): 전재우는 이 전략을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어글리 슈즈'나 '이케아 가방' 차용에 비유한다.3 명품 브랜드가 싸구려 디자인을 차용하여 고급 문화의 허위를 드러내고 새로운 미적 충격을 주듯, 건축가는 철거되어야 마땅한 '쓰레기'들을 디자인 요소로 격상시킨다.
- 가짜의 진정성: 그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대리석 패턴을 페인트로 그려 넣는 시도를 감행한다.20 이는 모더니즘 건축의 성소(Mies van der Rohe)를 키치적인 방식으로 모독하는 동시에 오마주하는 전형적인 캠프적 제스처다. "진짜 대리석"을 쓸 수 없는 예산의 한계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가짜 대리석"임을 뻔뻔하게 드러냄으로써(실패한 진지함), 물성 물신주의에 빠진 현대 건축을 조롱한다.
5. 비교 분석: 현상학, 매너리즘, 그리고 하이퍼스팬드럴
하이퍼스팬드럴의 이론적 위치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유사하면서도 대립적인 다른 건축 이론들과의 비교가 필요하다.
5.1 손택의 에로틱스 vs. 건축 현상학 (Architectural Phenomenology)
손택의 "예술의 에로틱스"와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aa)나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건축 현상학"은 모두 '감각적 경험'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 지향점은 정반대다.
| 비교 항목 | 건축 현상학 (Pallasmaa/Zumthor) | 손택의 에로틱스 / 하이퍼스팬드럴 |
| 핵심 가치 | 진정성(Authenticity), 본질(Essence) | 인위성(Artifice), 스타일(Style) |
| 감각의 성격 | 체화된(Embodied), 원초적, 촉각적 | 시각적, 지적, 표면적 |
| 재료관 | 재료의 정직성 (돌은 돌다워야 함) | 재료의 기만성 (페인트로 그린 돌) |
| 분위기 | 침묵, 엄숙함, 성스러움 | 수다스러움, 위트, 쿨함 |
| 목표 | 존재의 근원적 의미 회복 | 의미로부터의 해방, 감각적 유희 |
팔라스마는 『피부의 눈(The Eyes of the Skin)』에서 시각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촉각과 신체적 공명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인간 소외를 극복하려 한다.21 반면, 손택과 하이퍼스팬드럴 건축가들은 시각적 표면의 화려함을 긍정한다. 전재우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패턴을 '이미지'로 차용한 것은, 현상학적 관점에서는 '가짜'이자 '기만'이지만, 손택의 관점에서는 고도의 지적 유희이자 세련된 에로틱스다. 하이퍼스팬드럴은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우리를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얇은' 표면을 통해 우리를 자극하고 매혹시킨다.
5.2 현대적 매너리즘으로서의 캠프
하이퍼스팬드럴 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매너리즘'이다. 손택은 캠프의 기원을 18세기 매너리즘의 "기교에 대한 예찬"에서 찾는다.4 건축사적으로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의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의도적으로 깨뜨리고, 불안정하고 기괴한 형태를 추구했던 시기다.
- 규칙의 파괴: 미켈란젤로가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의 계단을 기괴하게 늘어뜨렸듯이, DCA는 신사동 건물의 스팬드럴을 비정상적으로 강조한다. 이는 커튼월 시스템이라는 현대의 고전적 규칙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파격이다.
- 긴장의 미학: 매너리즘이 고전주의의 조화 대신 긴장감을 추구했듯, 하이퍼스팬드럴은 상업 건축의 뻔한 논리 위에 이질적인 요소를 삽입하여 시각적 긴장을 유발한다. "세련되면서도 거친(sophisticated yet rough)"3이라는 평가는 바로 이 매너리즘적 특성을 지적한 것이다.
5.3 포스트-크리티컬의 진화: 투사에서 꾸며냄으로
소몰과 와이팅의 '투사적 건축'이 다이어그램과 프로그램의 조직화에 집중했다면, 한국의 하이퍼스팬드럴은 그보다 더 **물질적이고 구상적(figurative)**이다. 그들은 다이어그램을 그리는 대신, 실제 재료(알루미늄, 페인트, 유리)를 가지고 논다. 이는 포스트-크리티컬 담론이 추상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구축의 현장으로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는 것을 넘어, 그 파도의 물거품(spandrel)을 조형하여 자신들만의 성(castle)을 쌓고 있다.
6. 결론: 초(Hyper)의 시대, 생존을 위한 스타일
한국 현대 건축의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이퍼스팬드럴' 현상은 수전 손택이 60년 전 예견했던 미학적 태도가 21세기의 극동 아시아 도시에서 어떻게 물질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첫째, 표면의 승리다. 하이퍼스팬드럴은 건축이 더 이상 심오한 철학적 텍스트가 될 필요가 없음을 선언한다. 대신 그것은 도시의 표면을 구성하는 감각적 오브제로서 기능하며, 해석학적 깊이 대신 에로틱한 표면을 제공한다. 이는 손택이 염원했던 "사물 자체의 광휘"를 건축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다.
둘째, 캠프적 생존 전략이다. 30년이면 철거되는 건물을 지으면서 '영원성'을 논하는 것은 위선이다. 전재우와 그의 동료들은 이 허무한 현실을 직시하고, 오히려 그 찰나의 가벼움을 '캠프'라는 스타일로 승화시킨다. 그들은 상업 건축이라는 역할을 연기하지만, 그 연기가 너무나 과장되고 능숙해서 관객(도시인)으로 하여금 그 건물을 다시 쳐다보게 만든다.
셋째, 이중 코드의 가능성이다. 하이퍼스팬드럴은 자본에 종속되지도, 그렇다고 고고하게 저항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본의 언어(커튼월,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되, 그것을 시적으로(rhetorically) 구사함으로써 자본의 논리 내부에 자신들만의 자율적 영토를 구축한다. 이것이 바로 '꾸며낸 실재'의 힘이다.
결론적으로,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와 『캠프에 관한 단상』은 단순히 과거의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건축을 읽어내는 가장 예리한 도구다. 하이퍼스팬드럴은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이 건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대신 그들은 윙크하며 속삭인다. "이 건물의 표정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보십시오. 그것이 가짜라 할지라도." 해석의 시대가 저물고, 매혹과 수사의 시대가, 즉 '하이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부록: 참고 문헌 및 데이터 포인트
본 보고서에 인용된 주요 개념과 사실들은 제공된 리서치 스니펫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 수전 손택의 이론: 1
- 해석에 반대한다, 캠프에 관한 단상, 새로운 감수성, 에로틱스 등.
- 포스트-크리티컬 건축 담론: 8
- 로버트 소몰, 사라 와이팅, 도플러 효과, 비평적 건축 대 투사적 건축.
- 하이퍼스팬드럴 및 한국 현대 건축: 3
- 전재우, DCA, 신사 스팬드럴, 광운 인테리어, 건축은 꾸며낸 실재, 이중 코드, 수사학.
- 건축 현상학: 21
- 유하니 팔라스마, 페터 춤토르, 피부의 눈.
참고 자료
- Susan Sontag's “Against Interpretation” @ 60 / “Against Interpretation” between Freud and Feminism - ASAP/Review, 2월 19, 2026에 액세스, https://asapjournal.com/node/susan-sontags-against-interpretation-60-against-interpretation-between-freud-and-feminism/
- Against Interpretation, 2월 19, 2026에 액세스, https://sites.ualberta.ca/~dmiall/LiteraryReading/Readings/Sontag%20Against%20Interpretatio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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