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매개자의 퇴각

 

문화 생산의 생태계는 창작자와 소비자라는 이 두 개의 극점만으로 지탱되지 않는다. 사용자의 핵심 명제, 즉 "문화 매개자들이... 논란을 앞에 두고...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물리적, 상징적 이익을 얻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주장은 이 생태계의 숨겨진, 그러나 가장 강력한 행위자들의 책임을 정확히 조명한다. 문화 매개자(cultural mediators)—출판사, 비평가, 갤러리, 큐레이터, 영화제, 시상식 아카데미, 그리고 학술 기관—는 단순히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를 연결하는 수동적인 '도관(conduit)'이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이론적 틀 안에서, 이들은 '문화 생산의 장(field of cultural production)'1 내에서 능동적으로 가치를 생산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행위자(agent)이다. 부르디외에게 '장(field)'이란, 특정 자본(예: 경제적 자본 또는 문화적 자본)을 둘러싼 '권력의 힘과 투쟁(power forces and struggles)'이 벌어지는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사회적 공간(social arena)이다.2 문화 매개자는 이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으며, 이들의 '선택', '배제', '정당화' 행위는 어떤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고 어떤 작가가 '위대한 대가'로 호명되는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지적한 '뒤로 물러섬(retreat)'은 중립적인 태어나 수동적인 무지가 아니다. 이는 논란이라는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서, 자신들이 그간의 매개 행위를 통해 축적해 온 상징적 자본(symbolic capital, 즉 권위, 명성, '좋은 취향'의 소유자라는 평판)과 경제적 자본(economic capital, 즉 수익, 시장 점유율, 후원금)을 동시에 방어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strategy)'이다.4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자면, 이러한 전략적 후퇴는 매개자의 '아비투스(habitus)'5, 즉 그들 집단이 내면화한 구조화된 성향이, 주어진 '가능성의 공간(espace des possibles)'6 내에서 특정 '입장 표명(position taking)'4을 선택한 논리적 귀결이다.

본 보고서는 이 '퇴각'이라는 전략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매개자의 책임이 구조적으로 필연적임을 논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1부는 매개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품의 가치를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사용자가 언급한 '물리적, 상징적 이익'을 획득하는지 부르디외의 이론을 통해 분석한다.
  • 2부는 매개자가 논란에 직면했을 때 '퇴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적인 방어 논리—'예술 자율성', '저자의 죽음', '객관성', '검열 반대'—가 이론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얼마나 취약하고 모순적인지를 해부한다.
  • 3부는 영화, 문학, 철학 분야에서 발생한 구체적인 스캔들(로만 폴란스키, 페터 한트케, 우디 앨런, 마르틴 하이데거)을 심층 사례 연구로 삼아, 매개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 방어 논리를 사용했으며 그 논리가 어떻게 붕괴했는지를 추적한다.
  • 4부는 지젤 사피로(Gisèle Sapiro)의 '저자-기능' 분석과 '선택 설계' 이론을 통해, 매개자의 '선택'이 중립적인 플랫폼 제공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윤리적 함의를 지닌 '설계' 행위이며, 따라서 그 책임은 구조적으로 필연적임을 결론짓는다.

 

1부: 가치의 연금술: 매개 행위의 구조와 메커니즘

 

매개자는 단순히 완성된 작품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유통업자가 아니다. 그들은 가치 그 자체를 '창조'하는 연금술사이며, 이 과정은 명확한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따른다.

 

1.1. 문화 생산의 장(場)과 권력 투쟁

 

부르디외가 제시한 '문화 생산의 장'은 단순히 문화 상품을 '부유함 vs 가난함' 또는 '오래됨 vs 젊음'으로 분류하는 도표가 아니다.1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행위자들(개인과 집단)의 "포함 또는 배제... 그들의 행동과 상호 관계"를 결정하는 권력 투쟁의 역동적인 장(場)이다.2 이 장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상반된 자본의 논리 사이의 갈등에 의해 구조화된다. 바로 '경제적 자본(economic capital)'과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이다.7

사용자의 질의가 겨냥하는 현대의 매개자들, 즉 대형 출판사, 방송사, 저널리즘, 영화 아카데미와 같은 '대규모 문화 생산 단위(large units of cultural production)'8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부르디외는 이들을 '프롤레타로이드 인텔리겐치아(proletaroid intelligentsia)'8라고 명명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순수한 '미학적 입장(aesthetic position-takings)'과 '정치적 입장(political position-takings)' 또는 시장의 논리 사이의 모순을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된다.8

부르디외는 문화의 장을 두 개의 극점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자율적(autonomous)' 극으로, 예술 고유의 논리('순수 예술')를 강조하며 경제적 가치를 경시한다. 다른 하나는 '타율적(heteronomous)' 극으로, 시장, 권력, 대중의 의견과 같은 '외부적 요인(external factors)'에 의존한다.3 대형 상업 미디어는 명백히 이 '타율적' 극에 속하며, 이들의 목표는 종종 순수하게 "경제적이고 청중에게 어필하는 것(purely on economics and appealing to the audience)"이다.3

사용자가 지적한 매개자의 '책임 회피'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들의 '퇴각'은 개인적 결함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장'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필연적 증상이다. 논란이 발생했을 때, 이들 매개자는 '미학적 가치'(자율적 극의 논리, 예: 로만 폴란스키의 뛰어난 연출력)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경제적/정치적 입장'(타율적 극의 논리, 예: 기존의 권력 구조 옹호, 아카데미의 명성 유지)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 모순 자체가 그들이 이익을 얻는 방식의 핵심이다.

 

1.2. 정전화(Canonization) 엔진: 가치 부여의 권력

 

매개자의 가장 강력한 힘은 '정전화(canonization)', 즉 특정 작품이나 작가를 '고전' 또는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행위에서 나온다. 이 과정은 종종 작품의 '내재적 속성(intrinsic properties)'9과는 무관하게 작동할 수 있으며, 전적으로 매개자의 '축성(consecration)' 권력에 의존한다.

이 과정에서 비평(criticism)은 "결정적인 역할(determining role)"8을 수행한다. 비평가와 학자들은 작품에 '객관적으로 새겨진 의미(meaning objectively inscribed in a work)'8를 '해명'함으로써, 사실상 그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은 작가가 자신의 특이성을 실현하도록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8,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위를 통해 그 가치를 보증한다.

이러한 '가치' 부여 투쟁10은 결코 순수하지 않으며, 강력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기(politically and ideologically motivated)'11에 의해 추동된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 표현주의(Expressionism)가 급격히 정전화된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나치 정권에 의해 '퇴폐 미술(degenerate art)'11로 낙인찍혔던 표현주의는, 전후 나치즘의 대척점에 있는 예술, 즉 '민주주의, 자유, 개인주의'를 상징하는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11를 부여받았다.

이 과정에서 미술관장(museum directors)과 같은 매개자들은 '축성의 권력(power of consecration)'11을 행사하며, 심지어 대중이 전통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ideas of beauty)'11과 일치하지 않는 미학조차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작품이 3억 달러(2015년 기준)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거래되는 현상9은, 칸트가 말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부르디외가 지적했듯이 엘리트 매개자들이 소위 '고급' 예술에 엄청난 '상징적 가치'를 부여한 결과물이다.9

 

1.3. '뒤집힌 경제의 세계': 상징적 이윤과 물리적 이윤

 

문화 생산의 장은 '뒤집힌 경제의 세계(an economic world turned upside down)'7라는 역설적인 논리로 작동한다. 이 세계에서는 경제적 자본(돈)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금기시되며12, 대신 상징적 자본(명성, 권위, 인정)의 획득이 지상 과제로 간주된다. 예술과 돈에 대한 논의는 "수치스럽거나 금기시"된다.12

그러나 이 상징적 자본은 그 어떤 자본보다도 효과적으로 '물리적 이익', 즉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적 자본(예: 예술에 대한 식견, 학력)은 그 자체로 '상징적 자본'으로 기능하며, 이것이 자본임은 '인정되지 않고(unrecognized as capital)' 대신 '정당한 역량(legitimate competence)'이나 '권위(authority)'로 (오)인식된다.13 바로 이 (오)인식을 통해, 문화적 자본의 소유자는 "물질적, 상징적 이익(material and symbolic profits)"13을 동시에 확보한다.

매개자들은 이 '전환' 과정의 중심에 서서 이중의 이익을 취한다.

  • 큐레이터와 갤러리: 이들은 자신들을 '경제적으로 무관심한(economically disinterested)' 예술 전문가로 위치시킨다.14 바로 이 '무관심'이라는 태도를 통해서만, 그들은 현대 미술의 '불확실한 가치를 안정화'시키고 '명성을 부여할 권위(authority to confer prestige)'14를 얻는다. 이 권위는 다시 갤러리와 큐레이터에게 '경제적 역학(economic dynamics)'15을 재편할 힘을 주어, 작품 판매와 전시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게 한다. 그들의 상징적 이익(권위)이 물리적 이익(수수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 출판사와 시상식: 18세기에 후원자가 사라지고 출판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8, 출판사나 극장 제작자 같은 매개자들은 '경제적, 사회적 제약'에 종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택 행위(selective operations)' 자체가 '문화적 정당성(cultural legitimacy)'8을 부여받는 기관이 되었다. 세자르 상(César Awards)은 미국의 오스카상(Oscars)과 마찬가지로16, 수상자에게 조각가 세자르(César)가 디자인한 트로피17라는 '상징적 가치'와 더불어, 박스오피스에서의 성공18이라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안겨준다.

다음 표는 주요 문화 매개자들이 자신들의 매개 행위를 통해 어떻게 사용자가 지적한 '물리적(경제적) 이익'과 '상징적 이익'을 동시에 축적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표 1: 문화 매개자의 유형과 자본 축적 방식

 

매개자 유형 핵심 매개 행위 주된 경제적 이익 (물리적 이익) 주된 상징적 이익 (상징적 이익)
출판사 (Publishers) 출간 결정, 편집, 마케팅 도서 판매 수익, 저작권료19 업계 평판, '베스트셀러 작가' 발굴 명성, 문화적 의제 설정8
시상식 (Awards Academies) 후보 선정, 수상 (정전화) 후원금, 방송 중계권료, (회원들의) 박스오피스 상승18 '최고의 예술'을 정의하는 권위16, 국가적 명예, 문화적 정당성
비평가 (Critics) 리뷰, 평론 (가치 판정) 원고료, 급여, 도서 추천사 '좋은 취향'의 소유자라는 명성13, 문화적 담론 주도권8
큐레이터/갤러리 (Curators/Galleries) 전시 기획 (선택과 배제) 작품 판매 수수료, 입장료 수익20 '경제적으로 무관심한' 전문가라는 권위14, 예술사조 정의15
학계 (Academia) 연구, 강의, 학술 출판 급여, 연구비, 출판 인세 '정당한 역량'의 소유자13, 지적 권위, '유산'의 공식 해석자

 

2부: 무너지는 방어 논리: 중립과 자율성의 신화

 

1부에서 확인했듯이, 문화 매개자는 가치 생산의 핵심 행위자로서 막대한 상징적, 경제적 이익을 취한다. 그러나 논란이 발생했을 때, 이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이익과 권위를 방어하기 위해 '퇴각'하며, 이 퇴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이론적 알리바이를 동원한다. 2부는 이 방어 논리들이 왜 허구에 가까운지를 분석한다.

 

2.1. '저자의 죽음'이라는 알리바이

 

매개자의 방어: "우리는 작가의 사생활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작품의 미학적 가치만을 다룬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선언했듯이 '저자는 죽었다'."

이론적 근거: 롤랑 바르트의 1967년 에세이 '저자의 죽음(Death of the Author)'은 텍스트의 의미를 저자의 의도나 개인적 이력21에 가두는 전통적 비평에 반기를 들었다. 바르트는 텍스트가 "다차원적 공간"22이며, 그 의미는 '저자-신(Author-God)'22이 부여하는 단일한 '신학적 의미'가 아니라 독자의 해석을 통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21

논리적 반박: 이 방어 논리는 바르트의 이론을 그 본래의 비판적 맥락에서 탈취하여 정반대의 목적으로 오용하는 지적 기만이다.

  1.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을 때, 그는 '저자'라는 개념 자체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capitalist ideology)'23와 분리될 수 없는 역사적 구성물임을 지적했다. '저자의 이름(author's name)'은 작품을 하나의 '독점적 이름(proprietary name)'23 아래 고착시키고, 이를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23이라는 소유물로 만드는 장치라고 비판했다.
  2. 따라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 주체인 출판사가 '지적 재산권'에 기반해 '저자의 이름'(예: 우디 앨런, 마일로 야노풀로스)이 인쇄된 책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면서19, 동시에 그 저자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저자는 죽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3. 그들이 '저자의 죽음'을 호출할 때, 그들은 텍스트의 해방22이나 독자의 권력21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저자'의 이름값(브랜드 가치)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25은 극대화하면서, '저자'의 행위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책임'은 회피하려 한다. 이는 '저자의 죽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저자'라는 상품의 '지적 재산권'23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자본주의적인 '저자의 생존' 전략에 불과하다. 그들은 저자(person)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책임'만 죽기를 바랄 뿐이다.

 

2.2. 플로베르의 오독: '객관성'은 전략이지 중립이 아니다

 

매개자의 방어: "위대한 예술은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다. 창작자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귀스타브 플로베(Flaubert)가 말했듯이, 작가는 '우주 속의 신처럼,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아야 한다(present everywhere and visible nowhere)'.26"

이론적 근거: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를 집필하며, 발자크(Balzac)와 같은 이전 세대 작가들의 '설교하는' 서술 방식27을 거부했다. 그는 저자의 목소리를 숨기고 '미학적 거리(aesthetic distance)'28를 확보했으며, 독자가 스스로 '객관적 판단(objective judgment)'28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객관적 서사'를 추구했다.

논리적 반박: 이 '객관성'은 결코 '중립'이 아니었으며, 이를 '중립'의 근거로 인용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처사이다.

  1. 1857년 《마담 보바리》가 '공중도덕 및 종교에 대한 모욕'29으로 기소된 재판은, 플로베르의 이러한 '객관적' 서사 방식 자체가 당대 권력에게는 '이데올로기적 범죄(ideologically criminal)'29로 받아들여졌음을 증명한다.
  2. 검찰이 문제 삼은 것은 플로베르가 보바리 부인의 간통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 즉 '중립성' 그 자체였다. 플로베르의 '저자-서술자 분리' 전략은 가족, 종교 등 국가가 공인한 규범의 '유효성(validity)'과 '판단의 주체(subject of narration and judgment)'29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당대에는 매우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정치적 행위였다.
  3. 따라서 오늘날 문화 매개자가 '플로베르적 객관성'을 내세워 논란이 되는 작품(예: 페터 한트케의 학살 옹호)을 방어하는 것은, 플로베르의 전략을 정반대로 오용하는 것이다. 플로베르가 '기성 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사용했던 '객관성'이라는 칼을, 이들 매개자는 '비판받는 권력(학살 부인론자)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는 플로베르의 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2.3. '순수 예술'이라는 허상: 예술 자율성의 역사성

 

매개자의 방어: "예술의 가치와 도덕적 가치는 자율적(autonomous)이다. 예술 작품의 도덕적 결함이 그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이론적 근거: 이 주장은 '온건한 자율주의(moderate autonomism)'30라 불리는 미학 이론에 기반한다. 이 입장은 예술이 그 자체의 고유한 '미학적 태도(artistic attitude)'31를 요구하며, 도덕적 가치와 미학적 가치는 서로 독립적인 영역이라고 주장한다.30 이는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32의 오랜 전통에 기대고 있다.

논리적 반박: 부르디외와 지젤 사피로의 사회학적 분석은 이러한 '자율성' 개념 자체가 특정 시기에 특정 목적을 위해 '구성된' 이데올로기적 신화임을 폭로한다.

  1. 역사적 구성물: '순수' 예술(자율적 극)과 '상업' 예술(타율적 극)의 이중 구조는 19세기 중반(1830-1880)에 '구성(settled down)'된 것이다.12 예술이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된 것12은, 예술가들이 귀족이나 교회의 후원8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채택한 이데올로기적 전략이었다.
  2. 정치적 은폐: '예술 자율성' 논리가 가장 위험하게 사용된 사례는 지젤 사피로(Gisèle Sapiro)의 연구에서 드러난다. 사피로는 나치 점령기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문예지 '누벨 뢰뷔 프랑세즈(Nouvelle Revue française)'가 독일 대사 오토 아베츠(Otto Abetz)의 정치적 통제 하에 재출간되었을 때, 이들이 내세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자율성 논리가 실제로는 "이 문예지의 정치적 통제를 가리기 위한(to mask the political control)"33 수단이었음을 밝혔다.
  3. 결론: '예술 자율성'은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순수 원칙이 아니라, 특정 역사적 시기에 특정 목적(때로는 저항, 때로는 공모)을 위해 사용된 '전략'이다. 따라서 오늘날 노벨상 위원회와 같은 매개자가 이 '자율성'을 내세워 페터 한트케를 방어할 때34, 그들은 19세기 아방가르드의 저항적 몸짓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나치 부역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은폐'33를 위해 사용했던 위험한 논리를 반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2.4. '비판'과 '검열'의 의도적 혼동

 

매개자의 방어: "우리의 편집권/시상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censorship)'이며, '캔슬 컬처'라는 야만적 행위이다."

이론적 근거: 국가 권력에 의한 검열은 예술의 실험적 성격을 억압하고,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려는 보수적 목적을 가지며, "문화 공간을 질식(asphyxiation of the cultural space)"시킬 수 있다.35

논리적 반박: 이 방어 논리는 '검열', '비판', '편집권'이라는 세 가지 다른 개념을 의도적으로 혼동하여, 자신들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수사적 전략이다.

  1. 검열 vs. 편집권: '검열'은 주로 국가 권력이 이미 존재하는 표현물을 사후에 금지하거나 강제로 수정하는 행위이다. 반면, 아셰트(Hachette)와 같은 민간 출판사가 우디 앨런의 회고록 출간을 거부하기로 결정하는 것36은 '검열'이 아니라, 그들의 본질적인 사업 기능인 '편집권(editorial judgment)' 또는 '큐레이션(curation)'이다. 한 젊은 출판사 직원의 지적은 핵심을 찌른다. "표현의 자유가 출판 계약을 맺을 권리(the right to a book contract)와 너무 자주 동일시되고 있다".37
  2. 검열 vs. 비판: 매개자의 결정(예: 폴란스키 수상)에 항의하고38, 보이콧을 요구하며39, 내부 고발을 하는 행위40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더 많은 발언(more speech)"41을 통해 유해한 발언(예: 학살 부인)에 "반박하고(refute)" 그 해악을 "무효화(undo)"41하려는 또 다른 민주적 표현 행위이다.
  3. 전략적 혼동: 매개자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검열'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토론의 프레임을 '예술이냐 외설이냐' 또는 '표현의 자유냐 억압이냐'42로 바꾸어, 자신들의 '선택'에 내재된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고 토론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수사적 전략88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비판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검열'로 낙인찍는다.

 

3부: 스캔들의 해부: 논란에 직면한 매개자들

 

2부에서 논파된 방어 논리들은 실제 스캔들 현장에서 매개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 논리들은 비판자들의 저항과 매개자 내부의 균열로 인해 붕괴하고 있다. 3부에서는 아카데미, 출판, 학계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발생한 주요 사례를 통해 매개자들이 논란에 어떻게 직면하고, 어떻게 '퇴각'하며, 그 퇴각이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분석한다.

다음 표는 3부에서 다룰 핵심 사례들을 2부의 분석틀(방어 논리)과 연결하여 요약한 것이다.

표 2: 논란에 대한 매개자 대응 분석 (주요 사례)

 

사례 (행위자) 논란의 핵심 매개자의 초기 방어 논리 비판 주체 (및 방식) 최종 결과 (및 시사점)
페터 한트케 (노벨상 위원회) 스레브레니차 학살 부인 및 밀로셰비치 옹호43 "미학적 자율성", "작품과 작가 분리"34 학살 피해자 단체, 작가들55, 내부 위원54 수상 강행. (매개자의 권위가 '학살 부정'에 상징적 정당성 부여)
로만 폴란스키 (세자르 아카데미) 아동 성범죄 유죄 판결 및 도피46 "아카데미는 도덕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39 아델 하에넬59, 페미니스트 단체38, 이사회39 수상 강행, 아카데미 붕괴. (매개자의 '중립'이 '공모'임이 폭로됨)
우디 앨런 (아셰트 출판그룹) 양녀 성추행 의혹24 "편집권 독립", "시장 수요"24 내부 직원40, 로넌 패로우48 출간 취소.36 (매개자 내부의 윤리적 반란이 이윤 논리를 이김)
마르틴 하이데거 (클로스터만/철학계) '검은 노트'의 형이상학적 반유대주의49 "철학적 핵심과는 무관", "유산의 일부로 맥락화"51 동료 철학자들52, 학회장74 논쟁 지속. (매개자(학계)가 '정전'을 방어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

 

3.1. 사례 1: 아카데미의 '권위'와 '수치' (The Academy's 'Authority' and 'Shame')

 

시상식 아카데미는 '정전화(canonization)' 권력의 정점에 있는 매개자이다. 이들이 수여하는 상은 막대한 상징적,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18 따라서 이들의 '선택'은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3.1.1. 페터 한트케 (노벨 문학상, 2019)

 

스웨덴 한림원(Swedish Academy)이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페터 한트케(Peter Handke)를 선정했을 때, 그들은 오랜 역사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한트케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의 만행을 부인하고45, 1995년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의 사실관계를 의심하며43, 전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의 장례식에 참석해 연설한 인물이다.45

논란에 직면한 한림원(매개자)의 방어 논리는 2부에서 분석한 '예술 자율성'의 전형이었다. 한림원 회원들은 한트케가 "정치적 문제에 대해 도발적이고 부적절하며 불분명한 발언"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저작에서 시민 사회에 대한 공격이나 모든 사람의 동등한 가치에 대한 존중을 저버리는 내용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45 그들은 노벨상이 "전쟁 범죄나 학살 부인을 보상하려 한 의도는 분명히 없다"45고 해명했다. 이는 '작품'과 '작가'를 분리하는 '극단적 자율적 미학적 입장(extreme autonomous aesthetic stance)'34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 '분리'가 불가능하며 유해하다고 반박했다.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를 비롯한 작가들은 한트케가 "엄청난 통찰력과 충격적인 윤리적 맹목성(shocking ethical blindness)"55을 결합했다고 비판했다. 학살 피해자 단체와 시위대에게 이 수상은 "학살 부인의 국제화 및 정상화(internationalization and normalization of genocide denial)"43를 의미했으며, 한림원의 권위가 학살 부정론에 상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였다.56 이 스캔들은 한림원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균열을 일으켰다. 노벨위원회의 외부 위원 2명은 한트케 선정을 비판하며 사임했는데, 그중 한 명은 "2019년 수상자 선정은... 문학이 '정치' 위에 있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이는 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고 밝혔다.54

 

3.1.2. 로만 폴란스키 (세자르 상, 2020)

 

프랑스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세자르(César) 아카데미가 2020년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에게 감독상을 수여한 사건은, 매개자의 '중립' 주장이 어떻게 '공모'로 폭로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폴란스키는 1977년 13세 아동 성범죄(statutory rape) 혐의에 유죄를 인정한 뒤 미국에서 도피했으며, 이후에도 다수의 성폭력 의혹에 휩싸였다.46

논란에도 불구하고 폴란스키의 영화 <장교와 스파이(J'accuse)>가 12개 부문 후보에 오르자, 아카데미 원장 알랭 테르지앙(Alain Terzian)은 "아카데미는 상을 주는 데 있어 도덕적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should not take moral positions)"39고 주장하며 매개자의 '퇴각'을 공식화했다.

이에 대한 반격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이었다. 시상식 당일, 배우 아델 하에넬(Adèle Haenel)은 폴란스키가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시상식장을 떠나며 "수치심!(La honte!)"47이라고 외쳤다. 이 외침은 "브라보, 소아성애!(Bravo, paedophilia!)"61라는 절규로 이어졌다. 하에넬은 이미 시상식 전 "그를 수상자로 구별하는 것은 모든 희생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distinguishing Polanski” would be like “spitting in the face of all victims)"58이며, "이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58고 비판했다.

작가 비르지니 데팽트(Virginie Despentes)는 <이제 우리는 일어선다(Now We Get Up)>라는 제목의 격문에서 이 사건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녀는 이것이 프랑스 영화계 '보스들(bosses)'이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오메르타(omertà, 침묵의 카르텔)'64이며, 매개자들이 폴란스키를 방어하는 것은 "자신들의 범죄성 속에서도 우리의 존경을 요구하는(demanding our admiration even in your criminality)"64 행위라고 규탄했다. '중립'을 가장한 매개자의 '퇴각'이 사실은 피해자들에 대한 '상징적 폭력'38이자 기존 권력 구조와의 '공모'임이 폭로된 것이다. 이 사태의 여파로, 시상식 직전 아카데미 이사회 전원이 총사퇴39하며 아카데미는 사실상 붕괴했다.

 

3.2. 사례 2: 출판사의 '이윤'과 '윤리' (The Publisher's 'Profit' and 'Ethics')

 

출판사는 '시장 논리'라는 타율적 극3과 '문화적 가치'라는 자율적 극 사이에서 가장 첨예한 모순을 겪는 매개자이다. '이윤'은 출판사의 존속을 위한 최우선 과제이다.19

 

3.2.1. 우디 앨런 (아셰트 출판그룹, 2020)

 

아셰트(Hachette) 출판그룹은 양녀 딜런 패로우(Dylan Farrow)에 대한 성추행 의혹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우디 앨런(Woody Allen)의 회고록 <느닷없이(Apropos of Nothing)>를 비밀리에 계약하고 출간하려 했다.48

이들의 초기 방어 논리는 '시장 수요'24와 '편집권 독립'48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예상치 못한 두 방향의 공격에 직면했다. 첫째, 앨런의 아들이자 아셰트에서 자신의 책 <캐치 앤 킬(Catch and Kill)>을 출간했던 저자 로넌 패로우(Ronan Farrow)가 "나의 가족에게 피해를 준 사람의 책을 비밀리에 출간한" 출판사의 도덕성을 비난하며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36

둘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매개자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수십 명의 아셰트 직원들이 "우리는 우디 앨런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파업(walkout)을 감행했다.36 한 젊은 직원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를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저자"의 책을 작업하도록 요구받는 것37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 내부 저항은 '이윤'과 '시장'이라는 타율적 논리19가 매개자 내부의 윤리적 기준에 의해 패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으며, 결국 아셰트는 출간을 취소36했다.

 

3.2.2. 마일로 야노풀로스 (사이먼 & 슈스터, 2017)

 

사이먼 & 슈스터(Simon & Schuster, S&S)가 극우 트롤이자 브라이트바트 편집자였던 마일로 야노풀로스(Milo Yiannopoulos)에게 25만 달러라는 거액의 선인세25를 지급하고 출간 계약을 맺은 것은, 매개자의 방어 논리가 얼마나 전략적인지를 보여준다.

초기 비판(주로 인종차별적,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25)에 직면했을 때, S&S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단체들과 함께69 "독자들이 책의 실제 내용을 읽고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25며 '내용으로 판단하라'는 고전적인 방어 논리를 폈다. 저자 록센 게이(Roxane Gay)가 항의하며 자신의 책 계약을 철회하는25 등 비판이 거셌지만 S&S는 버텼다.

그러나 야노풀로스가 과거 "소년과 성인 남성 간의 관계"를 옹호하는, 즉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영상25이 발견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S&S는 '표현의 자유'나 '내용 판단'과는 무관하게 즉시 계약을 취소25했다. 이는 매개자의 '표현의 자유' 옹호가 확고한 원칙이 아니라, 인종차별은 감수할 수 있는 '상업적 리스크'였지만 소아성애 옹호는 감수할 수 없는 '상업적 독성'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들의 '윤리적' 결정은 결국 '이윤'19 계산의 결과였던 것이다.

 

3.3. 사례 3: 학계의 '유산'과 '공모' (The Academy's 'Legacy' and 'Complicity')

 

학계와 학술 출판사 역시 '유산(legacy)'을 관리하고 '정전'을 해석하는 핵심적인 문화 매개자이다.

 

3.3.1. 마르틴 하이데거 ('검은 노트')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검은 노트(Schwarze Hefte)》49가 2014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하면서, 철학계라는 매개자 집단은 거대한 스캔들72에 직면했다. 하이데거의 나치즘 동조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50, 《검은 노트》는 그의 반유대주의가 단순한 개인적 편견이나 정치적 일탈이 아니라, '세계 유대주의(Weltjudentum)'50를 '존재사(history of Being)'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즉 그의 철학의 핵심과 깊이 연관된 '형이상학적 반유대주의'임을 드러냈다.49

이 폭로에 대해 매개자(학계와 출판사)는 '퇴각'할 수 없었다. 출판사 비토리오 클로스터만(Vittorio Klostermann)은 수십 년간 하이데거의 원고를 엄격하게 통제해왔으며52, 이 출간 자체는 통제된 폭로였다. 스캔들이 터지자, 마르틴 하이데거 학회(Martin Heidegger Society) 의장 귄터 피갈(Günter Figal)이 사임했다.74

전 세계 대학과 학술 기관(에모리 대학 등75)에서 긴급 컨퍼런스가 소집되었고, 《하이데거의 검은 노트: 반유대주의에 대한 응답》52과 같은 대응 논문집들이 출간되었다. 이는 학계라는 매개자 집단이 자신들의 핵심 '상징적 자본'(하이데거 철학)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훼손되는 것을 막고, 이 '오염된' 유산을 어떻게든 '재맥락화'하거나 '비판적으로 재평가'함으로써52 매개자로서의 입장을 다시 정립하려는 필사적인 '투쟁'이었다. 그들은 하이데거를 '방어'하든, '비판'하든, '해석'하든, 어떤 식으로든 '입장 표명'을 강요당했으며, '중립'이나 '퇴각'은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4부: 정전화(Consecration)의 책임

 

분석은 다시 사용자의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매개자는 왜 논란 앞에서 물러서서는 안 되는가? 1부에서 3부까지의 분석은 그들이 '물리적, 상징적 이익'의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그 '가치' 자체를 창조하는 '행위자'임을 보였다. 4부는 매개자의 책임이 왜 구조적으로 필연적인지를 논증한다.

 

4.1. '작품과 작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해체

 

문화적 논쟁은 종종 "작품과 작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이분법적이고 교착적인 질문에 갇힌다. 사회학자 지젤 사피로(Gisèle Sapiro)는 그녀의 저서 《작품과 작가를 분리할 수 있는가?(Peut-on dissocier l'œuvre de l'auteur?)》76에서 이 질문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음을 지적한다.

사피로에 따르면, "우리는 분리할 수도 있고, 할 수 없기도 하다(We can and we can't)".76 그 이유는 '저자'라는 개념 자체가 낭만주의 시대에 '창조적 독창성' 개념과 '지적 재산권'의 등장과 함께 발명된77 사회적, 법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저자란 무엇인가?(What is an Author?)'에서 정의했듯이, '저자'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고유명사' 아래 일련의 담론을 통합하고 통일성을 부여하는 '저자-기능(author function)'77이다.

사피로는 흥미로운 비교를 제시한다. 우리는 의사나 변호사의 개인적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그의 처방과 그를 분리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는다.79 왜냐하면 그들은 '의학'이나 '법률'이라는 '단체 기관(corporate body)' 또는 '공식 기관(formal institution)'79의 이름으로 말하며, 그들의 발언 가치는 개인의 특이성이 아니라 '집단적 권위(collective authority)'79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반면, 작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다.79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 매개자의 본질적인 역할과 책임이 드러난다. 사피로의 분석을 따를 때, 문화 매개자(출판사, 아카데미, 갤러리)야말로 작가를 '의사'나 '변호사'처럼 '단체 기관'의 권위를 가진 존재로 '만들어주는' 바로 그 '단체 기관'이다. 출판사가 책을 출간하고, 노벨상 위원회가 상을 수여하고, 큐레이터가 전시를 여는 행위(즉, 매개 행위)는 이 '개인'의 발언을 '작품'이라는 공적 담론으로 승인하고 '축성(consecration)'11하는 행위이다. 즉, 매개자는 '저자-기능'77을 완성시키고 '상징적 가치'14를 부여하는 사회적 장치 그 자체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승인' 행위와 그 행위가 생산하는 가치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4.2. '형식은 중립적이지 않다': 플랫폼의 윤리학

 

매개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중립적인 플랫폼(neutral platform)'일 뿐이며, 단지 창작자에게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건축(architecture) 이론과 행동경제학의 논의는 '중립적 설계'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임을 증명한다.

건축 철학에서 "중립적인 건축 형태는 없다(no form of neutral architecture)"80는 주장은 오래된 명제이다. 건축가가 사용하는 도면, 단면, 평면도 등은 "수동적인 아이디어 복제 행위"가 아니라, "무엇이 사유되고 건설될 수 있는지를 형성하는" 인식론적 프레임(epistemological frames)'81 그 자체이다. 건축물은 그 설계(design)를 통해 이미 특정한 사회적, 도덕적 특징82을 구현하며, 때로는 특정 집단을 배제(architectural exclusion)하기도 한다.80

이는 행동경제학의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83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선택 설계' 이론의 핵심인 '필연성 논증(inevitability argument, IA)'83은 다음과 같다. 어떤 선택 환경(choice contexts)이든 필연적으로(inevitably)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면, 그 환경은 중립을 가장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사람들의 '복지(welfare)를 가장 잘 증진하도록' 적극적으로 배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83

출판, 수상, 전시, 비평과 같은 모든 매개 행위는 본질적으로 '문화적 선택 설계(Cultural Choice Architecture)'이다. 노벨상 위원회가 페터 한트케에게 상을 주는 것(플랫폼 제공)은, 대중에게 '학살 부인은 문학적으로 용인될 수 있으며, 심지어 최고로 권위 있는 가치'라고 미묘하게 '넛지(nudge)'83하는 선택 설계이다. 아셰트 직원들이 우디 앨런의 회고록 출간에 파업한 것40은, "이 선택 설계(앨런 회고록 출간)는 우리의 복지(윤리적 기준과 안전)에 반한다"는 강력한 저항이었다.

따라서 사용자가 비판한 매개자의 '퇴각', 즉 '중립' 선언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 유지를 통해 기존의 유해한 권력 구조64와 차별적 규범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도록 설계된, 가장 교묘하고 비겁하며 때로는 가장 유해한 '선택 설계'이다.

 

4.3. 결론: 불가능하지만 필연적인 매개자의 입장

 

본 보고서는 사용자의 핵심 명제, 즉 문화 매개자는 창작물과 창작자의 경제적, 상징적 가치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1부, 표 1), 그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이익을 취하는 매개자들이 논란 앞에서 '예술 자율성', '저자의 죽음', '객관성', '중립' 등(2부)의 방어막 뒤로 '퇴각'하려는 시도는, 이론적으로 모순적이며(2.1), 역사적으로 기만적33이고, 현실에서 이미 파산(3부, 표 2)했음이 드러났다.

예술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84, 예술가, 전문가(매개자), 관료, 지역 공동체 등 "서로 다른 집단(different groups of actors)"85 간의 '상징적 경계 투쟁(symbolic boundaries struggles)'85을 통해 끊임없이 협상된다. 문화 매개자는 이 '투쟁'의 고상한 심판이 아니라, 그 투쟁의 한복판에 있는 핵심 참여자이다.

아프리카계 페미니스트 영화감독 아망딘 게이(Amandine Gay)의 지적86은 이 모든 논의를 날카롭게 요약한다. 그녀는 <L'antiracisme en actes(행동하는 반인종주의)>라는 기사를 인용하며,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브렛 베일리(Brett Bailey)의 쇼를 둘러싼 논쟁을 언급한다. "만약 당신이 반인종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수백 명의 흑인과 아랍인들이 비난하는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인종주의에 대한 개념이 문제가 있는(problematic) 것일 수 있다."86

마찬가지로, 문화 매개자가 '예술'을 옹호한다고 주장하면서, 성폭력 피해자38, 학살 생존자43, 혹은 그들 자신의 내부 직원40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묵살하고 있다면, 그들이 옹호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특권(privilege)'87과 '폭력'64일 뿐이다.

문화 매개자가 '가치로부터 물리적, 상징적 이익을 얻는 입장'(사용자의 질의)인 한, 그들은 그 가치에 내재된 도덕적, 정치적 함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논란 앞에서 물러나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그들의 권위를 이용한 가장 강력한 방식의 공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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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Woody Allen's book could signal a new era in the publishing industry | The Outlin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theoutline.com/post/8789/woody-allen-book-hachette-walk-out
  41. A philosophical guide on how to manage dangerous art | Aeon Essay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aeon.co/essays/a-philosophical-guide-on-how-to-manage-dangerous-art
  42. The Social Nature of Offense and Public Protest over Art and Cultur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giarts.org/article/social-nature-offense-and-public-protest-over-art-and-culture
  43. Transnational Activism against Genocide Denial: Protesting Peter Handke's Nobel Prize in Literature | Nationalities Paper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nationalities-papers/article/transnational-activism-against-genocide-denial-protesting-peter-handkes-nobel-prize-in-literature/A80BD5A45E0EB1D8786779B4CF90104A
  44. A Literary Consecration of Genocide Denial - New Lines Magazin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newlinesmag.com/review/a-literary-consecration-of-genocide-denial/
  45. Swedish Academy defends Peter Handke's controversial Nobel win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9/oct/21/swedish-academy-defends-peter-handkes-controversial-nobel-win
  46. France's Polanski problem: Can you separate the artist from the man? - CGT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news.cgtn.com/news/2020-03-20/France-s-Polanski-problem-Can-you-separate-the-artist-from-the-man--P1jA4Dgmbe/index.html
  47. 45th César Awards - Wikipedia,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en.wikipedia.org/wiki/45th_C%C3%A9sar_Awards
  48. Ronan Farrow Cuts Ties With Hachette Over Woody Allen Memoir - Time Magazin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time.com/5795400/ronan-farrow-publisher-woody-allen-memoir/
  49. Assessing the significance of Heidegger's Black Notebooks - GH,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gh.copernicus.org/articles/73/109/
  50. Heidegger's 'black notebooks' reveal antisemitism at core of his philosophy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4/mar/13/martin-heidegger-black-notebooks-reveal-nazi-ideology-antisemitism
  51. Heidegger's Black Notebooks and The Question of Anti-Semitism - Ereigni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beyng.com/papers/HC2015Adrian.html
  52. Heidegger's Black Notebooks: Responses to Anti-Semitism | Review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ndpr.nd.edu/reviews/heideggers-black-notebooks-responses-to-anti-semitism/
  53. Nobel winner Peter Handke avoids genocide controversy in speech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9/dec/07/nobel-winner-handke-avoids-genocide-controversy-in-speech
  54. 'Gross hypocrisy': Nobel heavyweight to boycott Peter Handke ceremony | Nobel prize in literature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9/dec/06/nobel-swedish-academy-peter-handke-ceremony-peter-englund-literature
  55. 'A troubling choice': authors criticise Peter Handke's controversial Nobel win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9/oct/10/troubling-choice-authors-criticise-peter-handke-controversial-nobel-win
  56. Peter Handke and the power of denial | Opinions - Al Jazeera,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19/12/10/peter-handke-and-the-power-of-denial
  57. Morality on the Side: Peter Handke and the Nobel Prize - The Prindle Institute for Ethic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prindleinstitute.org/2019/10/morality-on-the-side-peter-handke-and-the-nobel-prize/
  58. France's #MeToo debate intensifies as Roman Polanski wins best director César | New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screendaily.com/news/frances-metoo-debate-intensifies-as-roman-polanski-wins-best-director-cesar/5147742.article
  59. Césars 2020 : « C'est la honte ! » - UNSA‑Education.com,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unsa-education.com/article-/cesars-2020-cest-la-honte/
  60. « C'est [toujours] la honte ! » - NPA Révolutionnaire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npa-revolutionnaires.org/cest-toujours-la-honte/
  61. Adèle Haenel - Wikipedia,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en.wikipedia.org/wiki/Ad%C3%A8le_Haenel
  62. Adèle Haenel retires over French film sector's 'complacency' towards sexual predator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culture/2023/may/09/adele-haenel-retires-over-french-film-sectors-complacency-towards-sexual-predators
  63. Anti-Polanski protesters greet French film awards ceremony - CBS New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cbsnews.com/news/roman-polanski-protesters-greet-french-film-awards-ceremony/
  64. CÉSARS: TIME TO GET UP AND GET OUT - The White Review,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whitereview.org/feature/cesars-time-to-get-up-and-get-out/
  65. The Emptiness Of Literature Written For The Market - Noema Magazin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noemamag.com/the-emptiness-of-literature-written-for-the-market/
  66. Why Hachette were wrong to drop Woody Allen's memoir - The Spectator,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spectator.co.uk/article/why-hachette-were-wrong-to-drop-woody-allens-memoir/
  67. Woody Allen memoir published in US after protest stops first attempt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0/mar/23/woody-allen-memoir-published-in-us-apropos-of-nothing
  68. What recent publishing controversies say about the industry - Nathan Bransford,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nathanbransford.com/blog/2023/05/what-recent-publishing-controversies-say-about-the-industry
  69. Free-speech groups defend publication of Milo Yiannopoulos memoir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7/jan/06/free-speech-groups-defend-publication-of-milo-yiannoploulos-memoir
  70. Free Speech Groups Release Statement in Support of Publisher of Milo Yiannopoulos' Book; UPDATE: NCAC Responds to Cancellation of Milo's Book,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ncac.org/news/blog/free-speech-groups-release-statement-in-support-of-publisher-of-milo-yiannopoulos-book
  71. Milo Yiannopoulos drops lawsuit over his cancelled book - The Guardian,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8/feb/20/milo-yiannopoulos-drops-lawsuit-over-his-cancelled-book
  72. The King Is Dead: Heidegger's “Black Notebooks” | Los Angeles Review of Book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king-dead-heideggers-black-notebooks/
  73. National Socialism, World Jewry, and the History of Being: Heidegger's Black Notebooks,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jewishreviewofbooks.com/articles/993/national-socialism-world-jewry-and-the-history-of-being-heideggers-black-notebooks/
  74. Martin Heidegger Society Chair Steps Down After Reading the Black Notebooks - Reddit,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reddit.com/r/philosophy/comments/2t2k4d/martin_heidegger_society_chair_steps_down_after/
  75. Heidegger's 'Black Notebooks' to be focus of Emory conferenc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news.emory.edu/stories/2014/08/upress_heidegger_conference/index.html
  76. Can author and work be separated? - - Aterraeredonda,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en.aterraeredonda.com.br/autor-e-obra-podem-ser-separados/
  77. Morality of the Author, Morality of the Work - Electra Magazin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electramagazine.fundacaoedp.pt/index.php/en/editions/issue-22/morality-author-morality-work
  78. Can We Dissociate the Work from the Author? A Conversation with Gisèle Sapiro,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collegium.ethz.ch/events/fellow-year-2024-2025/gisele-sapiro
  79. This author's work - minor reviews - WordPress.com,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geomsoc.wordpress.com/2021/03/04/this-authors-work/
  80. Architectural Exclusion: Discrimination and Segregation Through Physical Design of the Built Environment | Yale Law Journal,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yalelawjournal.org/article/architectural-exclusion
  81. The Project as Argument: What is Architectural Thinking? | ArchDaily,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archdaily.com/1033636/the-project-as-argument-what-is-architectural-thinking
  82. Philosophy of Architectur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architecture/
  83. The inevitability argument for choice architecture and the evidence-based view | Behavioural Public Policy | Cambridge Cor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behavioural-public-policy/article/inevitability-argument-for-choice-architecture-and-the-evidencebased-view/1B7835D90C71B7F762FF4A19E195FB80
  84. Do you think that art has boundaries? - ResearchGat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ost/Do-you-think-that-art-has-boundaries
  85. Full article: Public art debates as boundary struggles - Taylor & Francis Onlin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0286632.2021.2009472
  86. “You'll be Dazzled by My Joy” : Interview with Afrofeminist Filmmaker Amandine Gay | AWID,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awid.org/news-and-analysis/youll-be-dazzled-my-joy-interview-afrofeminist-filmmaker-amandine-gay
  87. The Complexities of Supporting Art by Problematic Artists | by RU Student Life | Call Me a Theorist | Medium,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medium.com/call-me-a-theorist/the-complexities-of-supporting-art-by-problematic-artists-989827511f6b
  88. The Problems With Censoring Problematic Art | by Mackenzie Amanda Darnielle - Medium,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medium.com/@rocknrollgeek1975/the-problems-with-censoring-problematic-art-cec663b2d9d9

 

 

 


제 1부: 건축가적 참조의 틀: 새로운 비평 장치

 

한 건축가가 제시한 텍스트는 단순한 의견 개진을 넘어, 현대 건축 이론을 위한 새롭고 강력한 비평적 장치의 토대로 기능한다. 그가 제시한 '전거(典據)', '근거(根據)', '준거(準據)'라는 세 가지 구분은 '영감' 대 '표절'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현대 건축 실무의 병리적 현상을 해부하는 데 필요한 정교한 어휘를 제공한다.

 

'질문'에 대한 엄밀한 해독

 

모든 분석은 저자(이하 '필자')가 받은 모호한 "질문"("한국 건축가들의 '참조와 인용'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서 시작된다. 필자의 에세이 전체는 이 질문에 대한 고도의 해체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 질문의 모호함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세 가지 건축적 사유 방식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 담론의 실패를 증명하는 증상이다. 필자는 이 모호한 질문을 세분화함으로써 비평의 대상을 명확히 한다.

 

핵심 용어의 정립

 

이 보고서는 필자가 제시한 세 가지 핵심 용어를 분석의 개념적 틀로 사용한다.

  • 전거(典據, Jeon-geo): '출처' 또는 '아카이브'. 감각적이고 즉각적이며 "예쁜" 것들의 영역.
  • 근거(根據, Geun-geo): '기반' 또는 '개념'. 프로젝트에 한정된 논리적, 기술적 프레임워크. 파티(parti).
  • 준거(準據, Jun-geo): '규범' 또는 '정신'. 프로젝트를 초월하며, 안정적이고, 철학적이며, 윤리적인 건축가의 "땅".

 

핵심 표: 건축 참조의 3가지 프레임워크

 

필자의 주장은 밀도 높고 그 정의는 매우 정밀하다. 다음 표는 이 새로운 용어 체계를 독자에게 명확하고 즉각적이며 지속적인 지도로 제공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학술적 도구이다. 이는 그의 미묘한 정의를 직접적인 비교 구조로 결정화하며, 보고서의 나머지 분석 과정에서 시금석 역할을 할 것이다.

 

특징 전거 (典據 - '출처') 근거 (根據 - '기반') 준거 (準據 - '규범')
핵심 정의 재료, 아카이브, 출처 기반, 개념, 파티(parti) 규범, 정신(Ethos), "땅"
범위 부분적, 세부적, 파편적 (한 프로젝트 내) 전체적 (건축가의 작품세계 전체) 총체적
시간성 즉각적, 순간적, 일시적 프로젝트 한정적, 임시적 안정적, 장기적, 획득된 것
본질 감각적, 직관적 ("예쁘다") 논리적, 기술적, 공간적 철학적, 윤리적, 인격적
핵심 은유 핀터레스트 검색 1 "트랙", "컨셉" "땅", "토양", "휴전 상태"
대체 가능성 무한히 대체 가능, 우연적 (프로젝트별로) 대체 가능 대체 불가능 (건축가를 정의함)
비평 대상 여부 아니오. ("비난해봐야 무용하다") 예. (기술적, 논리적 비평) 예. (본질적, 윤리적 비평)
문제점 준거가 없을 시 이것의 "노예"가 됨 "구조주의적 공간" 같은 모호한 개념은 무용함 핵심적 실패: 이것을 숨기거나, 속이거나, 부재함

제 2부: '전거' (Jeon-geo): 대체 가능한 이미지의 폭정

 

이 섹션은 필자의 전거 개념을 현대 이미지 중심 문화에 대한 날카롭고 직설적인 비판으로 분석한다. 그는 전거를 디자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져온", "대체 가능하고", "즉흥적이며", "감각적인" 재료(예: 핀터레스트)로 정의한다. 그는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선택 자체가 본질적으로 우연적이기 때문이다.

 

건축의 '핀터레스트화' (Pinterestification)

 

필자의 추상적인 전거 개념은 디지털 이미지 플랫폼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 데이터: "디자인의 핀터레스트화" 1는 "미학적 동질성" 1을, 그리고 "테라조 바닥, 아치형 출입구, 홈이 파인 패널, 재팬디 인테리어의 끝없는 흐름" 1을 초래했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말하는 "그 무엇이라도 상관 없었을지도 모르는" 전거의 세계이다.
  • 분석: "건축 콘텐츠에 대한 접근의 민주화" 2전거의 무한한 아카이브를 생성했다. 필자의 핵심 통찰은 이것이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증폭된 문제라는 것이다. 그가 찾을 수 있는 "좋은 것"의 "1%"는 이제 "나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무한한 수"를 의미하며, 이는 특정 선택을 통계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든다.

 

'감식안'의 해체

 

필자는 "감식안"을 이러한 우연적 선택 과정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행위로 일축한다.

  • 분석: 이는 "취향"이라는 건축가의 자기 신화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전거 중심의 세계에서 "취향"은 깊은 이해가 아니라 고속 필터링 알고리즘일 뿐이다. 인터넷 미학의 "바이럴 유행" 4이 완벽한 예이다. 전거에 대해 특별한 "눈"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건축가는 필자의 관점에서 "포장하는 이들"에 불과하다.

 

전거 비판이 무용한 이유 (심층 분석)

 

이 섹션에서 필자의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전거를 비판하는 것이 "무용하다"는 것이다. 이는 "복사-붙여넣기 건축" 1을 비판하는 평론가들의 일반적인 태도와 상반된다.

  • 심층 분석:
  1. 1의 필자와 같은 비평가는 "소셜 미디어 미학의 구토물"(테라조 등)을 그 자체로 윤리적 또는 미학적 실패로 간주한다.
  2. 그러나 필자는 이를 범주 오류로 본다. 전거(테라조)는 항상 우연적이다. 진정한 실패는 테라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지배하고, 종속시키고, 의미를 부여하는 시스템(근거 또는 준거)의 부재이다.
  3. 따라서 테라조를 비판하는 것은 핵심을 놓친 것이다. 건축가는 핀터레스트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듯이, "모든 선택에 어떠한 상관관계(=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4. 이는 모든 논쟁의 프레임을 바꾼다. 문제는 핀터레스트의 사용 3이 아니라, 상위 개념의 부재 속에서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제 3부: '근거' (根據): 프로젝트와 그것을 지배하는 개념

 

이 섹션은 필자가 프로젝트에 한정된, 총체적인 "컨셉" 또는 "트랙"으로 정의한 근거를 탐구한다. 이는 전거의 "무작위성"에 "법칙을 부여하는" *파티(parti)*의 영역이다. 그는 근거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건축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지아티의 명령: 개념은 공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필자는 강력한 근거의 모범으로 발레리오 올지아티(Valerio Olgiati)를 인용한다.

  • 데이터: 올지아티의 작업은 엄격하고 금욕적인 비전으로 정의된다.6 그는 "하나의 아이디어" 7에 기반한 "순수성" 9과 "조직화된 경험" 10을 추구한다. 그의 근거는 모호한 테마가 아니라 총체적인 공간 논리이다.
  • 분석: 이는 필자의 구별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는 올지아티의 (주장된) "컨셉은 공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을 칭찬하며, "구조주의적인 공간"과 같은 근거는 "아무 전거도 통제하지 못한다"고 일축한다. 올지아티의 "엄격한 콘크리트 공간" 6은 모든 후속 선택을 지배할 만큼 "충분히 구체적"이기 때문에 좋은 근거이다. 그것이 바로 필자가 묘사하는 "트랙"을 만든다.

 

'근거' 사례 연구: '파티오'와 김건호 교수

 

  • 데이터: 필자는 "김건호 교수님의 영향을 받은, 나를 포함한 이들이 사용하는 '파티오'라는 단어"를 인용한다. '파티오'에 대한 연구는 그것이 디자인 요소임을 보여준다.11 그러나 '김건호'에 대한 조사는 그가 실무 건축가(SGHS14)이자 교수(홍익대16)임을 드러낸다. 15은 이 건축가가 '서울 대청'을 도시와 연결되며 파티오처럼 기능하는 "가변적 공간"으로 논의하는 것을 보여준다.
  • 심층 분석: 이것은 내부자의 참조이다. 여기서 '파티오'는 단순한 안뜰이 아니다. 이는 필자가 속한, 김건호 교수가 가르치는 14 특정 교육적 또는 이론적 프레임워크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많은 전거를 통제할 수 있는" (마치 9-스퀘어 그리드처럼) 프로젝트에 적용될 수 있는 공유된 학문적 도구이자 엄격한 근거로서 기능한다. 필자가 제시한 좋은 근거의 예("중정을 두 개 가진 3층 집")는 이러한 파티오 중심의 근거를 직접적이고 실용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생성적 긴장: 근거 대 전거

 

  • 데이터: 필자는 "자유로운 전거"와 "꿰매는 근거" 사이의 "긴장 관계"를 묘사한다. 그는 "훌륭한 작품"이 이 긴장을 유지하는 작품이라고 가정한다.
  • 분석: 이 개념은 건축 이론의 핵심이다. 파티(근거)는 "일관성과 통일성" 17을 부여하는 "중심 아이디어" 18이다. 세부 사항(전거)은 "시각적 흥미"와 "역동적 긴장" 17을 제공한다.
  • 데이터 연결:
  • 20는 개념이 세부 사항을 테스트하는 데 사용되는 "통합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이것이 컨셉과 맞는가?" 이는 정확히 "끊임없이 '그것의 근거'를 요구하는" 필자의 근거와 일치한다.
  • 21는 건축가들이 "요소들의 패치워크"(전거)를 피하기 위해 "일관된 건축 스타일"(근거)을 고수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근거전거를 "꿰매는" 완벽한 사례이다.
  • 필자의 미해결 질문—"근거에 대한 전거의 위반... 이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는 아직 모른다"—은 모든 디자인의 본질적인 투쟁을 보여준다: "규칙"(근거)을 깨는 세부 사항이 언제 실수(mistake)가 아닌 천재성(genius)의 순간이 되는가?

제 4부: '준거' (準據): 건축가의 윤리적 토대

 

이 섹션은 필자 에세이의 철학적 핵심인 준거를 분석한다. 그는 이것을 건축가의 근본적인 "땅" 또는 "토양"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프로젝트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안정적이고, 개인적이며,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의 고통스러운 확장 이후에 온 것"이며 "모든 반박들을 견뎌낸" 윤리적, 철학적 입장이다.

 

실천의 '토양': 전쟁에서 태어난 윤리

 

  • 분석: 필자의 은유는 강렬하고 심오하다. 준거는 격렬한 내면의 "전쟁" 이후의 "휴전 상태"이다. 그것은 "수많은 대안들을 쳐내다가" "손아귀에 어쩌다보니 남게 된 단 하나의 선택지"이다. 이 프레임워크는 건축 철학을 수동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어렵게 획득되며, 윤리적인 입장으로 재구성한다.

 

예시 1: 루이스 칸의 아포리즘으로서의 '준거'

 

  • 데이터: 필자는 "루이스 칸의 아포리즘"을 인용한다. 연구 자료는 전체 인용문을 제공한다: "당신이 벽돌에게 말한다. '벽돌아,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벽돌은 답한다. '나는 아치가 되고 싶어.'".22
  • 분석: 이것은 준거완벽한 예이다.
  • 이것은 전거가 아니다: 칸은 벽돌이 "예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이것은 근거가 아니다: 단일 프로젝트를 위한 개념이 아니다.
  • 이것은 준거이다: 이것은 "구조적 진실성" 24과 "재료를 존중하는" 23 것에 대한 근본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도덕적, 윤리적" 나침반 24 역할을 하는 "철학" 25이다.

 

예시 2: 미스의 평면도로서의 '준거'

 

  • 데이터: 필자는 "미스의 평면"을 인용한다. 연구에 따르면 미스는 그의 철학에 대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26고 한다. "나의 주된 작업은 건물을 계획하는 것이었다.".26 그의 철학은 "진실" 27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 분석: 이것은 필자의 숭고한 통찰이다. 미스에게 준거는 건축에 관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준거는 평면에 구현된 건축 그 자체였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평면 28은 현현한 준거이다: "철학적 토대" 27에 뿌리를 둔 완전한 "미학적 건축 언어" 30를 보여주는 "현상학적 도구".28

 

준거의 본질: 비(非)텍스트적 정신(Ethos)

 

  • 심층 분석: 필자의 예시들(칸의 우화, 미스의 침묵하는 평면)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그는 또한 "집 앞 고기 가게의 서비스 정신"이나 "어머니가 툭 던진 한 마디"를 포함한다.
  • 분석의 흐름:
  1. 필자는 준거가 "이성적 공격과 감성적 반복"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2. 이는 준거가 반드시 공식적이고 학술적이며 글로 쓰인 철학일 필요는 없음을 의미한다.
  3. 그것은 *체화된 정신(ethos)*이다. 그것은 어길 경우 "죄책감을 느끼게 될" "나와 계약을 맺은 어떤 것"이다.
  4. 이것이 그가 그것을 "윤리"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것은 모든 이성적 공격에서 살아남은, 이성 이전(pre-rational) 또는 이성 이후(post-rational)의 토대이다. 그것은 건축가의 협상 불가능한 "진실성(integrity)"이다.31

제 5부: 논쟁: '준거' 은폐의 윤리적 실패

 

이 섹션은 보고서의 정점으로, 필자가 "문제"로 규정한 것을 다룬다. 그는 전거근거는 "숨겨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준거를 숨기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 섹션은 그의 비판을 현대 건축 담론의 병폐에 대한 연구 자료와 통합한다.

 

'문제': '영구적 휴전'과 비평의 거부

 

  • 분석: 필자의 중심 논지는 탁월하다. 그는 자신의 준거를 숨기는 건축가들이 "외부에서 내게 침투할지도 모르는 더 나은 명분을 차단"하려 애쓰는 "영구적인 휴전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 '비평 면책'의 메커니즘 (심층 분석):
  • 분석의 흐름:
  1. 필자는 "준거가 없거나" "거짓말하는" 건축가들은 "근본적으로 비평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 이 메커니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만약 한 건축가의 작품이 비판받는다면, 그는 이를 회피할 수 있다.
  3. 전거에 대한 비판 (예: "당신의 건물은 못생겼다"): 건축가는 "그것은 대체 가능하고 우연적인 선택이다. 무관하다"고 답한다 (필자 자신이 주장하듯이).
  4. 근거에 대한 비판 (예: "당신의 개념은 결함이 있다"): 건축가는 "그 개념은 프로젝트를 위한 것이었다. 내 다음 프로젝트는 다른 개념을 가질 것이다"라고 답한다.
  5. 유일하게 유효하고 중요한 비판은 준거에 대한 비판이다: "당신의 근거(이 프로젝트)는 당신이 공언한 준거(당신의 윤리)와 모순된다." 또는, "당신의 준거(당신의 윤리) 자체가 결함이 있다."
  6. 따라서 준거숨김으로써, 건축가는 이 본질적이고 윤리적인 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이 궁극적인 "윤리적 실패"이다. 이는 "진실성"의 실패이며 31, 건축의 "사회적, 도덕적 특성" 34으로부터의 후퇴이다.

 

병리 1: 사후 합리화의 '거짓말'

 

  • 데이터: 필자는 "사후적으로 스스로에게 부여한 거짓된 종합"을 비난한다. 이는 사후 합리화(post-rationalization)의 정확한 정의이다.
  • 분석: BIG와 같은 회사에 대한 비평가들은 "지적 체면의 겉치레" 35를 제공하기 위해 "진정한 생성이 아닌 사후 합리화의 정신으로" 35 컴퓨테이션을 사용한다고 지적한다.35 유명한 "다이어그램" 36은 어쩌면 전거 중심의 형태적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에 사후적으로 적용된 근거(혹은 심지어 준거)이다. 이것이 필자가 식별한 "거짓말"이다.

 

병리 2: '스타키텍트'의 '부재'

 

  • 데이터: 필자는 "전거근거의 노예"에 불과한 "준거가 없는 이들"을 비판한다. 이는 "스타키텍트"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 분석: "스타키텍트" 브랜드 37준거대체재로 기능한다.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책, 강의, 철학"은 "건축계에서 가장 정교한 마케팅 캠페인에 불과하다"고 비판받는다.40 이러한 "브랜딩" 39준거를 외부 지향적으로 시뮬레이션한 것이지만, 필자가 요구하는 내적이고 "전쟁으로 찢어진"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윤리적 핵심이 없는 "서명" 38일 뿐이다.

 

병리 3: 형식주의 대 윤리

 

  • 데이터: 필자의 텍스트는 건축 비평을 형식주의(formalsim, 즉 전거근거의 연구)에서 윤리(준거의 연구)로 이동시키라는 암묵적인 요구이다.
  • 분석: 형식주의는 종종 "사회적 책임, 감정적 내용"과 같은 "다른 무언가의 부재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된다.41 필자는 바로 이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건축의 "사회적, 도덕적 특성" 34을 인식하고 "미학적 문제" 32를 넘어서려는 철학적 전환 32에 동참하고 있다. 그의 준거는 바로 그 사회적/도덕적/윤리적 책임이다.

제 6부: 결론: 건축가 자신의 '준거'로서의 선언문

 

이 결론 섹션은 필자의 분석적 렌즈를 그 자신의 텍스트로 되돌릴 것이다. 이 에세이 자체가 그것이 요구하는 건축적 윤리의 수행적 행위임을 주장할 것이다.

 

한국적 맥락: '땅'을 찾아서

 

  • 데이터: 한국 건축가로서 "땅"을 찾으려는 필자의 탐구는 깊은 울림을 갖는다. 한국 현대 건축의 기초를 놓은 김수근(Kim Swoo-geun) 42은 "건축이 고유한 개념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선포한" 44 한국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을 현대 건축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집념" 44을 가지고 있었다.
  • 분석: 필자의 텍스트는 이러한 "거대한 집념"의 직접적인 연속이다. 그는 단순히 "전통 양식" 45이나 "국가적 이미지" 45전거가 아닌, 진실하고 비판적이며 철학적인 "땅" 44으로서의 준거를 찾고 있다.

 

공개의 윤리: 수행적 '준거'로서의 텍스트

 

  • 분석: 필자는 자신이 비판한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준거를 숨기지 않는다. 마지막 문단에서 그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선언한다: "이 생각은 나의 준거이다. 내가 속한 땅이다."
  • 이것은 지적, 윤리적 진실성의 궁극적인 행위이다. 그는 "영구적인 휴전 상태"에 있지 않다. 그는 "더 나은 준거"를 가진 "누군가가 찾아와... 나를 이끌지 않을까"하는 비판을 초대할 명시적인 목적으로 자신의 준거를 공개했다.

 

마지막 초대: 오픈소스화된 정신(Ethos)

 

  • 심층 분석: 필자의 마지막 용기 있는 입장은 그의 철학 전체의 구현이다. "스스로 내가 돌본 꽃들을 짓밟고" "미련 없이 떠나리라"는 그의 의지는, 그가 비판하는 "외부의 더 나은 명분을 차단하려는" 건축가들과 정반대이다.
  • 결론: 따라서 그의 텍스트는 단순한 학술적 프레임워크가 아니라 선언문이다. 그것은 "내면의 전쟁"을 치르고, "휴전 상태"(준거)를 확립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그것을 공개할 31 용기를 가진 한 건축가의 수행적 시연이다. 그는 더 윤리적인 건축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바로 그 아이디어의 "전쟁"을 초대하며 자신의 "땅"을 완전히 드러내 보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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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Aesthetic Trends and Accessibility: Interior Design in the Age of Social Media | ArchDaily,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archdaily.com/998678/aesthetic-trends-and-accessibility-interior-design-in-the-age-of-social-media
  5. A Decade of AI Platform at Pinterest | by Pinterest Engineering - Medium,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medium.com/pinterest-engineering/a-decade-of-ai-platform-at-pinterest-4e3b37c0f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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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Valerio Olgiati – TLmagazine, 11월 6, 2025에 액세스, https://www.tlmagazine.com/valerio-olgi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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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비평의 난관과 '옳음'의 건축

 

시게루 반(Shigeru Ban)과 같은 건축가를 비평하는 것은 특정한 난관에 부딪힌다. 이는 프라이 오토(Frei Otto)나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를 순수한 건축의 관점에서 비평하기 어려운 것과 유사하다. 반이 긴자에 설계한 상업 건물과 같은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가 재난 현장에서 지관(紙管, paper tube)을 사용해 지은 건축물들은 기존의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미학적 판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존재한다. 이 어려움 자체가 시게루 반 건축의 핵심적 사실, 즉 그의 건축은 '옳다'는 명제를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미학이나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모더니즘의 핵심 강령이었던 '의식'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도시와 건축의 실패가 사회악의 근원이라 믿었듯, 시게루 반은 "사람들이 건물로 인해 죽고 있다"고 담담히 말하며 건축의 혁명을 통해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모더니스트의 사회적 책임을 계승한다. 이 보고서는 시게루 반의 작업을 '작품 활동'과 '사회적 참여'라는 이중적 구조로 분석하고, 이 두 축이 어떻게 그의 독창적인 '도덕적 합리주의'로 수렴되는지, 그리고 왜 그의 작업이 전통적인 건축 비평의 형식을 무력화하는 '반(反)건축'의 특성을 띠는지 논증할 것이다.

 

제1장 이중적 실천: 작가와 인도주의자

 

시게루 반 스스로가 설명하듯, 그의 작업은 '작가'로서의 미학적 탐구와 '참여자'로서의 인도주의적 실천이라는 두 개의 뚜렷한 축으로 나뉜다.

 

1.1 '작품 활동': 작가적 언어와 그 계보

 

그의 '작품 활동'은 알바 알토(Alvar Aalto) 전시회 인테리어 같은 초기 작업에서부터 뉴질랜드의 카드보드 대성당(Cardboard Cathedral)이나 프랑스의 상업적 랜드마크인 상트르 퐁피두-메츠(Centre Pompidou-Metz)에 이르기까지, 고도로 세련된 '작가적' 언어를 보여준다.

반은 자신의 스타일적 참조점이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의 존 헤이덕(John Hejduk), 그리고 리처드 노이트라(Richard Neutra)와 같은 '서부 해안 스타일'의 모더니스트들로부터 유래했다고 밝힌다. 헤이덕은 '뉴욕 파이브'의 일원으로서 건축의 형태 어휘 자체에 대한 시적이고 실험적인 탐구로 유명하며, 특히 헤이덕의 '종이 건축(paper architecture)' 개념은 반이 종이라는 재료의 구조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헤이덕이 교육에 도입한 '9그리드 문제(nine-square grid problem)'는 건축의 기본 요소(그리드, 프레임, 면, 볼륨)를 탐구하는 기본적인 훈련 방식이다.

캘리포니아의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산업적 미학을 토대로 하되, 기후와 문화에 조응하는 지역적 양식을 구축하려 했다. 이러한 배경은 반의 '작가적' 작업이 순수한 기하학적 유희와 재료의 물성 탐구, 그리고 서구 모더니즘의 계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1.2 '사회적 참여': 프라이버시라는 근본적 권리

 

반의 또 다른 축인 '사회적 참여'는 르완다 내전, 동일본 대지진, 아이티 대지진, 우크라이나 전쟁, 튀르키예 지진 등 전 세계의 비극의 현장을 대상으로 한다. 그는 NGO인 자발적 건축가 네트워크(VAN)를 설립하여 임시 주거와 공동체 시설을 공급해왔다.

이 활동의 핵심에는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기본 원리"라는 그의 신념이 있다. 재난 상황에서 프라이버시는 종종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지만, 반은 이것이 개인의 존엄성이자 정치적 행동의 기초임을 인지한다. 그는 재난 대피소의 열악한 환경이 거주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협하며, 특히 프라이버시가 없는 환경은 여성들이 대피소 입소를 꺼리게 만들어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종이 칸막이 시스템(Paper Partition System, PPS)'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건축적 응답이다. 종이 튜브와 천으로 만들어진 이 간단한 모듈형 시스템은 대피소 내부에 최소한의 개인 영역을 확보해준다. 이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제시하는 '광장(Gwangjang, 공적 영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밀실(Mil-sil, 사적 영역)'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변증법적 통찰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은 사회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최소한의 '밀실'을 제공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재난 이후 공동체 회복('광장')의 의지를 고양한다.

 

제2장 통일된 에토스: 합리성, 공학, 그리고 사랑

 

시게루 반의 천재성은 이 두 개의 분리된 듯한 실천('작품'과 '참여')을 하나의 일관된 윤리적, 방법론적 체계로 통합하는 데 있다.

 

2.1 글로벌 합리주의와 '형태 찾기'

 

반의 작업에서 '지역성'은 철학적 원인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그가 재난 현장에서 파벽돌, 플라스틱 상자, 혹은 종이 튜브를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로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가장 '값이 싸고, 수급이 쉬우며, 다루기 편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철저한 글로벌 건축가이며, 가장 합리적인 것을 택하려는 그의 의지가 때로 지역적 재료의 사용으로 귀결될 뿐이다.

그의 미학은 '형태 만들기(form-making)'가 아니라 프라이 오토가 말한 '형태 찾기(form-finding)'에 가깝다. 그는 재료의 효율적 활용과 구조적 강성을 우선시하며, 목조 구조물을 보호하던 방수포를 더 가볍고 질긴 탄소 섬유로 대체하거나, 단일 목재보다 다루기 쉬운 합성 목재를 선호하는 등 부단한 '개선'을 추구한다. 그에게 미학은 '작가적' 표현이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공동체성'의 미학이다.

 

2.2 '작품'의 실험, '참여'의 적용

 

전형적인 건축가들이 사회적 참여 프로젝트를 자신의 작가성을 홍보할 기회로 삼는 것과 정반대로, 시게루 반은 자신의 '작품 활동'을 '사회적 참여'를 위한 실험장으로 활용한다. 그는 넉넉한 예산과 자유도가 보장된 상업 및 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평소 고민하던 재료, 구법, 형식을 실험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의 프로젝트를 통해 컨테이너 건축을 실험한 후, 그 노하우를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인 미야기현의 임시 공동주택에 즉시 적용하는 식이다. '작가성'을 보고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인도주의적 실천을 위한 기술 개발의 장으로 삼는 이러한 태도는 그의 확고한 윤리적 에토스를 보여준다.

 

2.3 임시성과 영원성: "사랑받는 건축"

 

반의 건축은 '임시 건축'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건축의 영원성이 재료가 아닌 '사랑'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그 구조물을 사랑하는지 여부가 그것이 영구적이 될지를 결정한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사랑한다면, 종이라도 영구적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는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지어진 '종이 교회(Paper Church)'이다. 160명의 자원봉사자가 5주 만에 완성한 이 지관 구조의 임시 교회는, 10년 후 그 역할을 다하고 대만의 지진 피해 지역인 타오미 마을로 '이주'하여 영구적인 건축물로 기능하고 있다. 반대로 아무리 견고한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라도, 공동체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상업적 논리에 의해 쉽게 파괴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임시적'인 건축이다.

 

제3장 반(反)건축과 비평의 종말

 

시게루 반의 이러한 태도는 그를 전통적인 건축 비평의 장에서 벗어나게 한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사건에 대한 충실성(fidelity)'을 통해 사건의 의미가 사후적으로 구성된다고 말했듯, 반의 건축물은 그 자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1 형식 비평의 무력화

 

반의 건축은 그 건축물에 부여된 '맥락적 가치', 즉 에토스와 내러티브가 평가의 대상이 될 뿐, 형식적으로는 분석을 거절한다. 리미널 스페이스나 키오스크에 대한 형식적 분석이 얄팍해지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고베의 '종이 교회'를 순수한 조형물로 분석하는 것은 그 건물의 본질을 완전히 놓치는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게루 반의 건축은 진정으로 '파괴적'이다. 그는 건축의 약한 부분이 아니라 가장 강한 부분, 즉 '형식 비평'이라는 건축의 핵심 작동 기제를 파괴한다. 그는 건축을 짓거나 부수는 대신 '전개하거나 거두어들이고', 한 국가의 재난 대응 법규를 바꾸는(그의 종이 칸막이 시스템은 이후 일본 정부의 표준 재난 구호 물품이 되었다) 등, 건축의 정의 자체를 확장한다.

 

3.2 작가적 순진함: 비평의 잔여물

 

물론 시게루 반을 신화화할 수는 없다. 그의 '작가적' 작업 중 일부는 비평의 여지를 남긴다. 히로시마의 시모세 미술관(SIMOSE Art Museum) 프로젝트에서 나타나는 순진한 은유들—예를 들어 히로시마가 선박 제조 기술로 유명해서 배 모양을 고안했다거나, 특정 국가의 상징이 다섯 장의 꽃잎이어서 오각형 매스를 사용했다는 식의 접근—은 되새겨볼 가치가 없는 얄팍한 형식주의에 머무른다. 이는 그의 '사회적 참여' 작업이 보여주는 치열한 합리성과는 대조적이다.

 

결론: '옳은' 코스모폴리탄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게루 반은 오늘날 우리가 기꺼이 준거로 삼아야 할 건축가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는 '코스모폴리탄'이라는 가치의 옳은 버전을 보여준다. 그의 건축은 세계시민을 위한 것이면서도 교훈적이거나 오만하지 않고, 인류애적이지만 공을 가로채려 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로컬하지만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으며, 값싸고 임시적이지만 견고하고 깨끗하다.

그의 건축이 비평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그의 작업이 미학적 판단의 영역을 넘어 보편적 가치와 공동선이라는 도덕적 당위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게루 반의 건축은 모더니스트의 의식과 엔지니어의 형식을 함께 갖춘 진정한 합리주의자의 초상이며, 어떤 건축은 '비평'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되어야 할 낡은 관습에 맞서기 위해 존재함을 증명한다.



 

1. 철학적 토대: 미스적 위계의 정의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건축을 관통하는 질서는 단순한 미학적 선호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기능적, 사회적 위계를 넘어선 존재론적(ontological) 위계에 대한 깊은 탐구의 산물이다. 그의 건축에서 나타나는 위계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건물의 '이데아(idea)'와 우연적이고 경험적인 건물의 '현상(phenomenon)' 사이의 신플라톤주의적 구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이데아는 구조체, 즉 '뼈(bones)'로 표상되며, 현상은 공간을 구획하는 외피, 즉 '살(skin)'로 나타난다. 이 위계질서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건축 작업을 해독하는 개념적 열쇠이다.

 

1.1 바우쿤스트(Baukunst)의 추구: 시대정신의 의지로서의 건축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야망은 단순히 기능적인 건물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바우쿤스트(Baukunst)', 즉 '건축예술'을 추구했다. 이는 당대의 시대정신(Zeitgeist)의 영적인 본질에 형태를 부여하는 행위였다. 그의 저명한 선언, "건축은 시대의 의지를 공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Architecture is the will of an epoch translated into space)"는 건물이 그 시대의 가장 심오한 진실—미스의 관점에서는 기술, 합리주의, 그리고 새로운 비인격적 질서의 진실—을 구현해야 한다는 신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바우쿤스트'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위계적이다. 그것은 건축에 영적이고 역사적인 사명을 부여함으로써 단순한 '건설(building)' 행위 위에 군림하는 '건축(architecture)'을 상정한다. 이 거대한 야망은 필연적으로 건물 자체 내에서도 위계를 창조하도록 이끌었다. 건물의 모든 요소가 이 시대를 초월하는 '의지'를 동등하게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관 설비는 주 구조 프레임보다 시대정신을 덜 순수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스는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건축 요소들이 지닌 영적이고 철학적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위계 개념의 기원이다. 건축의 어떤 요소는 시대의 영원한 진리를, 다른 요소는 일시적인 필요를 담아내도록 구별된 것이다.

 

1.2 "거의 아무것도 아닌(Beinahe Nichts)": 물질적 절제를 통한 영적 열망

 

미스의 유명한 경구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는 미학적 간결함을 넘어선 영적인 수련의 과정이었다.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beinahe nichts)"으로의 환원은 본질적인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신플라톤주의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연결되며, 정화를 통해 신 또는 진리를 찾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스에게 있어 건축적 형태의 극단적인 단순화는 물질 세계의 혼란을 제거하고 순수한 존재의 영역, 즉 영적인 영역에 도달하려는 시도였다.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의 추구는 근본적인 역설을 낳는다. 건물에서 가장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부분인 구조체를 초월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들기 위해, 미스는 그 주변의 모든 것을 비물질화해야만 했다. 여기서 위계는 단순히 요소를 분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위' 요소들(살, 레이어)을 '주요' 요소(뼈, 그리드)를 영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배경으로 사용하는 전략이 된다. 즉, '살'의 물질성이 희생되거나 비물질화됨으로써 '뼈'의 영적인 영광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건물의 가장 본질적인 물질 요소는 구조체, 즉 '뼈대'이다. 산업 제조의 산물인 강철 I-빔을 어떻게 영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 기술의 '사실'로서 주어진 빔 자체의 형태를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주변의 맥락을 바꿔야만 한다. 주변의 외피를 투명하고, 반사적이며, 비구조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구조 프레임은 고립되고 순수한 추상적 오브제로 제시된다. 이는 기능적, 미학적, 철학적 위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1.3 요소의 존재론: 구조(뼈)와 외피(살)의 구분

 

이 개념은 미스 위계의 양극단을 정의하는 핵심이다. 구조는 객관적 사실, 기술, 그리고 영원한 진리의 영역으로 제시된다. 반면, 외피는 주관적 경험, 예술적 구성, 그리고 공간적 자유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분리는 그의 핵심 원리였으며,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과 헨드릭 페트뤼스 베를라허(Hendrik Petrus Berlage)와 같은 선구자들로부터 이어진 구조적 정직성(tectonic honesty)의 역사적 선례를 따른다. 미스에게 있어 프레임은 '실재하는' 건축 그 자체였고, 벽은 단지 공간을 나누는 스크린에 불과했다.

이러한 구조와 외피의 분리는 칸트(Kant) 철학의 물자체(noumenon)와 현상(phenomenon) 같은 철학적 이원론을 건축에 직접적으로 투영한 것이다. 구조 프레임은 '물자체', 즉 객관적 실재이며, 그것을 둘러싼 레이어들은 '현상', 즉 그 실재가 주체에 의해 인식되는 방식이다. 합리적이고 불변하는 그리드는 객관적이고 예지적인(noumenal) 영역을 대표한다. 반면, 반사, 투명성, 그리고 변화하는 인식을 만들어내는 레이어들은 주관적이고 현상적인(phenomenal) 영역을 대표한다. 따라서 미스의 건축은 거주자가 객관적 진리와 주관적 인식 사이의 긴장을 경험하는 철학적 드라마의 무대가 된다. 그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가 객관적 진리와 주관적 인식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체험하게 하는 철학적 모델을 창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섹션 2: 합리적 질서의 현현으로서의 그리드

 

그리드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주요 도구이다. 그것은 이성, 보편성, 그리고 산업 시대의 비인격적 질서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구조의 '진실'이 투영되는 시스템이 바로 그리드이다. 그리드는 미스의 건축에서 단순한 구성 도구를 넘어, 그의 철학적 신념 체계 그 자체를 대변한다.

 

2.1 실용적 도구에서 형이상학적 틀로: 미스적 그리드의 진화

 

미스의 그리드는 미국 철골 구조 건설의 실용적인 기원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서 원리로서 격상되었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 동시에 신념 체계의 선언이었다. 그리드는 전체 디자인을 규율하는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시스템으로 작용했으며, 산업적 합리화와 표준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미스는 이를 통해 "새로운 구조적 원리"를 창조하고자 했다.

미스에게 그리드는 보편적인 자연법칙의 건축적 등가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그리드의 공정한 논리에 종속시킴으로써, 자신의 주관적인 변덕을 제거하고 더 높은 객관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스는 건축이 개인의 의지가 아닌 "시대의 의지"를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 기술, 합리주의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가장 순수하게 건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한히 확장 가능하고, 비위계적이며, 합리적인 시스템, 즉 그리드였다. 그리드를 절대적인 원칙으로 채택함으로써 그는 자기부정의 행위를 수행했다. 디자인 결정은 '그의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었다. 따라서 그리드는 단지 패턴이 아니라, 주관성보다 객관성을 우선시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리드는 미스가 한 걸음 물러서서 시대정신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2.2 그리드와 보편적 공간: 균질하고 무한한 장의 창조

 

그리드는 '보편 공간(Universalraum)', 즉 어떤 기능이든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미분화된 공간을 달성하는 핵심 열쇠이다. 그리드는 방향성 없는 균질한 점들의 장(field)을 만들어내며, 이 장은 어떤 한 점도 다른 점보다 중요하지 않은 '보편 공간'의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 개념의 궁극적인 사례는 일리노이 공과대학(IIT)의 크라운 홀(S.R. Crown Hall)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크라운 홀은 내부 지지 기둥이 전혀 없는 "보편적 공간"으로, 그리드는 거대한 지붕 구조와 창 멀리언(mullion)으로 표현된다.

'보편 공간'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지닌다. 비위계적인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그리드는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사회의 이상화된 비전을 투영한다. 그것은 고정된 위계가 없는 사회, 유연하고 현대적인 사회 질서를 제안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드의 절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통제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미스가 정한 시스템 내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자유'가 있다. 이는 모더니즘의 핵심적인 긴장을 드러낸다. 진정한 자유는 무정부 상태가 아니라,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따라서 완벽하게 통제되는 시스템을 통해 달성된다는 사상이다. 모든 기둥과 멀리언의 배치는 미리 결정되어 있으며, 이 경험은 그리드의 논리에 대한 복종을 전제로 한다.

 

2.3 상징으로서의 I-빔: 그리드의 절점이 미적 오브제가 될 때

 

분석의 초점은 이제 그리드의 구조적 표현으로 이동한다. 특히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의 외부 멀리언으로 사용된 I-빔은 미스 철학의 궁극적인 상징으로 분석될 수 있다. 그것은 그리드의 일부를 가시화한 것이며, 구조적 사실을 숭고한 오브제로 변환시킨 것이다. 그의 신조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는 바로 여기서 완벽하게 예시된다. I-빔의 디테일은 장식이 아니라, 건물의 내적 진실을 드러내는 계시이다.

시그램 빌딩의 비구조적 I-빔은 미스의 작업에서 가장 명시적인 '투영' 행위이다. 그는 말 그대로 구조 그리드의 '이데아'를 건물의 외피에 투영하고 있다. 미스의 위계는 구조 프레임의 표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러나 당시 건축 법규는 시그램 빌딩의 실제 강철 프레임을 내화 성능을 위해 콘크리트로 감싸도록 요구했다. 이로 인해 구조의 '진실'이 보이지 않게 되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미스의 해결책은 청동 I-빔을 외부에 추가하는 것이었다. 이 빔들은 구조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급진적인 행위이다. 그는 구조의 상징, 즉 재현물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행위는 그의 주된 목표가 편협한 의미의 '재료에 대한 정직성'이 아니라 '철학적 정직성'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질서를 보이게 만들어 그리드의 '개념'을 파사드에 투영함으로써, 실제 구조가 숨겨져 있을 때조차도 외피에 대한 구조의 우위라는 자신의 위계를 고수했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진실은 문자 그대로의 물질적 진실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철학적 진실이었다.

 

섹션 3: 지각적 경험의 장치로서의 레이어

 

그리드가 객관적 질서의 시스템이라면, 레이어는 주관적 경험의 시스템이다. 이 섹션에서는 미스가 유리, 석재, 물의 평면을 사용하여 유동적이고 모호하며 현상학적으로 풍부한 공간 경험을 어떻게 창조했는지 탐구한다. 이 경험은 그리드의 경직성과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레이어는 그리드가 설정한 엄격한 규칙에 대한 시적이고 감각적인 응답이다.

 

3.1 투명성의 시학: '비-벽(Non-Wall)'으로서의 유리벽

 

유리 커튼월은 단순한 창이 아니라 철학적 선언이다. 그것은 공간을 동시에 정의하고 해체하는 레이어로서, 내부와 외부 사이에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판스워스 주택(Farnsworth House)에서 유리는 최소한의 장벽으로 작용하여, 자연 그 자체가 집의 진정한 '벽'이 되게 한다. 이러한 접근은 완전한 투명성이라는 이상과 그것의 실제 사용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유리는 "살과 뼈(skin and bones)" 건축을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유리 레이어는 건물 외피를 비물질화하는 주된 동인이다. 그 목적은 '살'을 사라지게 만들어 다른 두 가지 요소, 즉 거주자와 외부 세계 사이의 직접적인 시각적 연결, 그리고 '뼈'(구조 프레임)의 가시성을 최우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미스의 위계는 구조를 1차적으로, 외피를 2차적으로 규정한다. 외피를 가능한 한 '부차적인'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그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리벽은 역설적인 오브제다. 날씨를 막는 물리적 장벽으로 존재하지만, 시각적으로는 거의 부재한다. 그것은 '비-벽'이다. 유리를 사용함으로써 미스는 '살'의 존재감을 최소화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구조 프레임과 주변 환경의 인지된 중요성을 극대화한다. 즉, 유리 레이어는 위계 내 다른 요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양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3.2 독립된 평면: 재료와 색으로 공간을 레이어링하다

 

이 분석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과 투겐타트 주택(Tugendhat House)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독립 평면(free-standing plane)에 초점을 맞춘다. 대리석, 오닉스, 트래버틴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이 레이어들은 공간을 완전히 둘러싸지 않으면서 공간을 정의하여, 유명한 '흐르는 공간(flowing space)'을 창조한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독립벽들은 구조적 하중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동선을 유도한다. 이러한 효과는 경계가 명시되기보다는 암시되는 "흐르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신중하게 선택된 재료들은 그 자체로 미적 사건이 된다.

이 독립 평면들은 미스 시스템의 '예술적' 또는 '우연적' 요소들이다. 그리드가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산문'을 제공한다면, 이 레이어들은 구체적이고 시적인 '운문'을 제공한다. 그들의 배치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항상 보이지 않는 그리드에 의해 규율되어 인지된 자유와 실제 질서 사이에 긴장을 조성한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규칙적인 십자형 기둥 그리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객관적 질서이다. 동시에 대리석과 오닉스 평면들은 독립적이고 예술적으로 배치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레이어이다. 그러나 그 배치는 무작위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그리드의 보이지 않는 선들과 정렬되고 상호작용한다. 이는 변증법을 창조한다. 그리드는 기저의 규칙, 즉 문법을 제공한다. 평면들은 단어와 문장처럼 시적으로 배열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문법을 따라야 한다. 이는 위계를 반영한다. '뼈'(그리드)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법칙을 설정하고, '살'(레이어)은 그 법칙 안에서 통제된 예술적 자유를 허용받는다. 즉, 예술(레이어)은 자유롭지만, 오직 진리(그리드)의 절대적인 틀 안에서만 자유롭다.

 

3.3 반사와 모호성: 공간의 증식과 경계의 흐림

 

이 부분에서는 광택 있는 석재, 크롬 도금 기둥, 그리고 수면에서의 반사를 사용하여 공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레이어링하는 기법을 탐구한다. 반사는 증식자(multiplier)로 작용하여, 거주자의 고체와 공허, 실재와 허상에 대한 인식을 시험하는 가상의 레이어들을 만들어낸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재료들(크롬, 유리, 물)에서 반사의 사용은 "비물질화되고" 무한한 공간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레이어가 어떻게 지각적 모호성을 생성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한다.

반사의 사용은 '살'의 부차적이고 현상적인 본질을 주장하는 궁극적인 도구이다. 반사면은 그 자체의 이미지를 가지지 않으며, 오직 주변의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순전히 다른 오브제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레이어이다. 이는 존재론적 위계를 강화한다. 구조 프레임(그리드)은 고정된 객관적 정체성을 가지는 반면, 둘러싸는 평면(레이어)은 빛, 날씨, 그리고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이고 우연적인 정체성을 가진다. 반사로 가득 찬 건물을 만듦으로써, 미스는 단단한 매스의 건축이 아닌 지각의 건축을 창조한다. 이는 '살'을 비물질화하고 덧없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험으로 만든다. 반면, 구조 기둥들은 종종 무광이거나 명확하고 견고한 형태를 유지하며, 변화하는 반사 속에서 불변의 존재로 남는다. 이는 철학적 위계를 다시 한번 강화한다. 그리드/구조는 불변하는 객관적 '실재'이며, 레이어화되고 반사적인 살은 덧없는 주관적 '현상'이다. 미스의 건축은 관찰자에게 이 구분을 직접 경험하도록 강요한다.

 

섹션 4: 실천적 종합: 투영의 사례 연구

 

이 섹션에서는 이론적 틀을 미스의 주요 프로젝트에 적용하여, 그리드와 레이어의 변증법이 그의 위계를 투영하기 위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보여준다. 분석에 앞서 명확하고 구조화된 개요를 제공하기 위해 비교 분석표를 제시한다.

 

표 4.1: 미스 반 데어 로에 주요 작품의 그리드-레이어 적용 비교 분석

 

프로젝트 그리드 적용 (질서의 투영) 레이어링 기법 (경험의 투영) 표현된 위계 (종합)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1929) 8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구조 그리드를 통한 암시적 공간 질서. 그리드는 압도적인 시각 요소라기보다 미묘한 조직 원리. 화려한 대리석과 오닉스로 된 독립 평면; 투명, 회색, 녹색 유리의 평면; 넓은 반사 연못. 레이어는 공간을 둘러싸지 않으면서 정의. 지붕과 외피의 분리: 지붕 평면은 독립벽 위로 독립적으로 떠 있어, 구조(지붕/기둥)가 외피(벽)와 존재론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보여줌.
판스워스 주택 (1951) 명시적인 구조 프레임. 8개의 I-빔은 지면에서 들어올려진 지배적인 미학적, 형태적 요소. 그리드가 곧 건물임. 투명한 외피를 형성하는 단일하고 연속적인 전면 유리 레이어. 내부는 중앙 서비스 코어로 레이어화됨. 프레임의 절대적 우위: 집은 구조 프레임에 의해 공간에 떠 있는 두 개의 수평면(바닥과 지붕)으로 구상됨. 유리 '살'은 프레임의 절대적 우위를 위해 존재하는 거의 부재에 가까운 2차적 레이어.
S.R. 크라운 홀 (1956) 기념비적인 외부 프레임. 지붕의 4개 거대한 강판 거더가 기둥 없는 "보편 공간"을 창조. 그리드는 지붕과 파사드 멀리언으로 표현됨. 강철 멀리언으로 분할된 단일하고 균일한 유리 레이어. '레이어'는 그리드의 표현과 완전히 통합되고 규율됨. 구조와 공간의 통합: 위계는 구조(지붕 거더)가 공간의 유일한 창조자가 됨으로써 표현됨. 공간이 곧 구조임. 유리 외피는 이 사실을 찬미하는 팽팽하고 최소한의 막.
시그램 빌딩 (1958) 내화 피복 뒤에 숨겨진 합리적 구조 그리드. 그러나 비구조적인 청동 I-빔 멀리언을 통해 파사드에 투영됨. 그리드는 상징적이고 리듬감 있는 장치가 됨. 청동과 착색 유리의 외피. 타워는 화강암 광장과 함께 거리에서 뒤로 물러나 있어, 공공에서 사적으로 이어지는 시퀀스를 레이어링함. 질서의 상징적 표현: 위계는 상징적으로 주장됨. 비구조적 멀리언은 구조 그리드의 이데아에 대한 증거이며, 개념적 질서가 문자 그대로의 구조적 표현보다 더 중요했음을 보여줌.

 

4.1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1929): 비물질화된 이상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미스의 위계 개념이 가장 시적으로 구현된 사례 중 하나이다. 여기서 그리드는 미묘한 십자형 기둥들을 통해 암시적으로만 존재하며, 자유롭게 배치된 것처럼 보이는 대리석과 유리 평면들을 위한 보이지 않는 질서 체계를 제공한다. 구조는 8개의 가느다란 크롬 도금 기둥과 평평한 지붕 슬래브로 환원된다. 이 구조는 공간을 정의하는 화려한 벽체들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특히 지붕 평면이 벽체와 어떤 접촉도 없이 그 위를 떠다니는 듯한 모습은 구조(뼈)와 외피(살)의 존재론적 분리를 절대적으로 선언한다.

레이어링 기법은 공간 경험을 극대화한다. 녹색 톤의 유리, 반투명 유리, 그리고 붉은 빛이 감도는 오닉스 벽과 같은 다채로운 평면들은 시각적 깊이와 복잡성을 만들어낸다. 이 벽들은 공간을 완전히 막지 않고 동선을 유도하며 시선을 차단하거나 열어주어, 거주자가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더해, 건물 바닥을 형성하는 거대한 반사 연못은 외부의 레이어로서 기능하며 건물의 기반을 시각적으로 해체하고 하늘과 주변 환경을 건축 내부로 끌어들인다. 반사와 투명성, 그리고 물질의 병치는 파빌리온을 물리적 실체라기보다는 지각적 현상의 집합체로 만든다.

 

4.2 판스워스 주택 (1951): 구조 프레임의 절대적 우위

 

판스워스 주택에서 미스의 위계는 가장 명료하고 교훈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건물은 바닥 평면, 지붕 평면, 그리고 이 둘을 허공에 띄우는 8개의 구조 기둥이라는 절대적인 본질로 환원된다. 여기서 그리드는 더 이상 암시적인 질서가 아니라 건물 그 자체이다. 하얗게 칠해진 강철 프레임은 건축의 유일한 주인공이며, 모든 미학적, 형식적 표현을 독점한다.

유리벽은 이 위계를 강화하기 위한 극단적인 장치이다. 그것은 '제로-디그리(zero-degree)' 외피, 즉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모든 건축적 중요성을 강철 프레임에 양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레이어이다. 유리는 외부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내부의 거주자를 외부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시킨다. 이는 투명성이라는 이상이 실제 거주 환경에서 야기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미스의 철학적 관점에서 이 유리는 '살'의 역할을 최소화하여 '뼈'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존재를 찬미하기 위한 필수적인 희생이었다. 판스워스 주택은 구조가 곧 건축이며, 외피는 단지 그것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투명한 막에 불과하다는 미스의 신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4.3 크라운 홀 (1956) & 시그램 빌딩 (1958): 그리드의 도시적, 상징적 표현

 

미스의 후기 대규모 작업에서 그리드와 레이어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고 상징적인 차원으로 발전한다. IIT 캠퍼스의 크라운 홀은 '보편 공간'의 궁극적인 실현이다. 건물 외부에 노출된 4개의 거대한 강판 거더가 지붕 전체를 지탱하여, 내부에는 어떠한 기둥도 없는 70미터 길이의 거대한 단일 공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위계는 외부의 거대한 구조가 내부 공간 전체를 규정함으로써 표현된다. 공간은 구조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며, 유리와 강철 멀리언으로 이루어진 외피는 이 거대한 구조적 위업을 감싸는 팽팽하고 정밀한 막의 역할을 한다. 레이어는 그리드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되고 통합되어, 구조적 질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시그램 빌딩은 이 논의의 정점을 이룬다. 이 고층 건물에서 미스는 자신의 위계를 가장 의식적이고 이론적인 방식으로 투영했다. 실제 구조 프레임은 내화 피복 뒤에 숨겨져 있지만, 미스는 비구조적인 청동 I-빔을 외피에 부착하여 내부 그리드의 리듬과 질서를 외부로 '투영'했다. 이 행위는 미스에게 있어 건축의 진실이 단순한 물질적 정직성을 넘어선 개념적, 철학적 질서의 표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청동 멀리언은 구조의 '이데아'를 상징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합리적 질서가 건물의 가장 중요한 본질임을 선언한다. 건물은 화강암 광장 위에 세워져 도시의 그리드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으며, 이는 공적인 도시 공간에서 사적인 건물 내부로 이어지는 일련의 레이어를 형성한다. 시그램 빌딩은 미스가 자신의 철학적 위계를 도시적 스케일에서 상징적으로 완성한 걸작이다.

 

섹션 5: 결론: 투영된 질서의 영원한 유산

 

결론적으로,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그리드와 레이어는 단순한 형식적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심오한 철학적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의 건축을 지배하는 위계, 즉 '살'에 대한 '뼈'의 존재론적 우위는 현대 세계 속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의 건축을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그리드는 '바우쿤스트'의 영원하고 객관적인 질서를 투영했고, 레이어는 공간의 유동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투영했다. 이 둘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통해 미스는 기술 시대의 합리성과 인간 경험의 시학을 하나의 건축적 총체로 융합하고자 했다.

그리드는 이성의 법칙, 즉 시대정신의 비인격적 의지를 대변했다. 그것은 주관적 변덕을 배제하고 보편적 진리에 도달하려는 미스의 열망을 구현한 형이상학적 틀이었다. 반면, 유리, 석재, 물의 레이어는 빛과 그림자, 반사와 투명성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학적 세계를 창조했다. 이 레이어들은 그리드가 설정한 엄격한 질서 내에서만 허용된 통제된 자유를 누렸으며, 그들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그리드가 표상하는 구조적 진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접근 방식은 '보편 공간'의 비인간적인 차가움이나 기능적 실패 가능성과 같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의 건축이 제시하는 절대적인 질서는 때로 인간적인 삶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가 남긴 유산은 지대하다. 그는 건축이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사상 체계를 구축하는 지적인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강철과 유리뿐만 아니라, 이데아와 개념으로 건물을 지은 건축가로서, 그의 투영된 질서는 오늘날까지도 건축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꾸밈없는 언어'을 통한 '건축 예술(Baukunst)'으로의 접근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는 종종 "Less is more"나 "God is in the details"와 같은 간결한 격언으로 대표되는, 비지성적이고 직관적인 건축가로 인식되어 왔다.1 그러나 프리츠 노이마이어(Fritz Neumeyer)가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꾸밈없는 언어: 건축 예술에 대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생각(The Artless Word: Mies van der Rohe on the Building Art)》에서 심도 있게 파헤쳤듯이, 이러한 통념은 미스의 건축 이면에 있는 깊고 지속적인 철학적 탐구를 간과하는 것이다.3 노이마이어의 연구는 미스의 건축이 단순한 미학적 선호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방대한 장서, 저술, 그리고 사적인 기록에서 발견되는 철학적 사유의 물리적 현현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미스의 과묵함은 이론에 대한 경시가 아니라, 완벽하게 구현된 건축은 그 자체로 매개 없이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신념의 표현이었다.3

이 보고서의 중심 논제는 미스의 건축을 단순한 건물(Architektur)이 아닌, 그가 선호했던 용어인 '건축 예술(Baukunst)'의 개념을 통해 분석하는 것이다. 미스에게 '바우쿤스트'는 단순한 구축 행위를 넘어선 "공간적으로 파악된 시대의 의지(raumgefaßter Zeitwille)"를 의미했다.7 노이마이어가 분석했듯, 이 개념은 이중적 과정을 내포한다. 첫째는 '건축(Bau)'의 행위로, 이는 구축을 통해 객관적 현실을 충족시키고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다. 둘째는 '예술(Kunst)'의 행위로, 이는 형태를 통해 시대의 내적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다.7 객관적 현실과 정신적 표현 사이의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야말로 미스 작업의 핵심 동력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미스의 설계 과정을 하나의 '번역(translation)' 행위로 규정하고자 한다.8 그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자유와 운동의 감각, 그리고 정신적 질서에 대한 탐구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정신을 공간, 구조, 재료라는 건축적 언어로 번역했다. 이 보고서는 그의 건축 언어를 구성하는 문법과 구문을 분석할 것이다. 즉, 근본적인 질서로서의 '그리드', 공간의 구성으로서의 '레이어', 그리고 표현적 어휘로서의 '재료의 구축법(tectonics)'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미스의 유명한 경구 "Less is more"는 미니멀리즘이라는 미학적 선호가 아니라,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하는 철학적 정제(distillation)의 원리다. 이는 벽돌 한 장, 구조 시스템, 혹은 한 시대의 본질적 진리, 즉 '오르드눙(Ordnung, 질서)'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노이마이어의 연구는 우리가 이 원리를 단순한 양식적 선택이 아니라, 플라톤주의와 유사하게 본질적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보도록 이끈다.3 단순함을 위한 환원("less")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본질적인 이념인 '바우쿤스트'를 더욱 심오하게 표현("more")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기서 "more"는 시각적 단순함을 넘어선 정신적, 철학적 명료함을 의미한다. 이는 그의 모든 프로젝트를 미학적 차원에서 존재론적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제1장 그리드의 형이상학적 틀: 오르드눙(Ordnung)의 탐구



1.1 트래버틴 바닥: 이상을 현실로 만들다

 

분석의 시작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바닥이다. 정밀하게 깔린 트래버틴 바닥의 줄눈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질서 체계의 물리적 현현이다.10 이는 미스가 자신의 건축을 위한 토대로 삼고자 했던 순수하고 합리적이며 보편적인 틀, 즉 '오르드눙'을 대표한다. 이 그리드는 벽체를 넘어 외부로 확장되며, 건물 자체보다 선재하는 보편적 장(field)의 존재를 암시한다. 그리드는 건축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형이상학적 기반이며, 모든 요소가 관계를 맺는 기준점이다.

 

1.2 순응과 이탈의 변증법

 

이 장의 핵심은 미스가 이 그리드에 순응하는 요소와 그로부터 의도적으로 해방시키는 요소 사이에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을 분석하는 것이다.

 

기둥: 법칙의 구현체

 

8개의 크롬 도금된 십자형 기둥은 그리드의 교차점에 완벽하게 정렬되거나(모서리의 4개), 최소한 하나의 축에는 정렬되는(중앙의 4개) 유일한 요소다. 이들은 하중을 지지하는 구조, 즉 건물의 불변하고 논리적인 '뼈대'를 상징한다. 그리드와의 완벽한 정렬은 그들이 보편적 법칙에 복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11 기둥은 구조라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힘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벽: 자유의 표현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오닉스, 대리석, 유리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독립 벽체들은 그리드 선으로부터 세심하게 비켜서 배치된다.13 이 벽들은 결코 그리드 선과 완벽하게 정렬되지 않으며, 모서리는 자유롭고, 그 길이는 그리드와 무관하게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구조적 역할에서 해방된 이 벽들은 창조적 자유, 공간을 정의하는 주관적 행위, 그리고 인간 경험의 유동적이고 우연적인 본질을 상징한다.11

 

1.3 그리드의 철학적 기원

 

노이마이어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긴장감은 미스가 심취했던 철학적 독서를 통해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노이마이어가 미스의 사상에서 중심 주제로 파악한 "내재적 합법성(intrinsic lawfulness)"과 "창조적 자유(creative freedom)" 사이의 대화를 반영하며, 특히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와 같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다.14 그리드는 '법칙'이고, 벽은 '자유'다. 건축은 이 둘 사이의 "긴장의 장(field of tension)"에서 발생한다.14 이러한 해석은 파빌리온의 평면도를 단순한 구성 다이어그램에서 현대 세계의 질서와 자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논고로 격상시킨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중앙에 위치한 네 개의 기둥이 완벽한 그리드 교차점에서 미묘하게 벗어나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설계상의 오류나 실용적 타협이 아니다. 이는 건물의 핵심적인 변증법을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드는 장치다. 이 세부 사항은 '절대적인' 구조 법칙조차도 그것이 자리 잡는 공간의 특정 조건에 적응하고 반응해야 함을 암시하며, 시스템이 경직되고 생명 없는 독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한다. 초기 분석에서는 기둥이 질서를, 벽이 자유를 대표한다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평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직 네 개의 모서리 기둥만이 이상적인 그리드 교차점에 완벽히 위치함을 알 수 있다. 내부의 네 기둥은 한 축의 그리드 선상에는 있지만 다른 축에서는 벗어나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믿었던 건축가에게 이 디테일은 반드시 의미를 지닌다. 이 미묘한 이동은 법칙/자유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제3의 항을 도입한다. 즉, '법칙' 자체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상적인 경계를 정의하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법칙(네 모서리 기둥)과, 특정 지붕 경간을 지지하는 적용되고 반응하는 법칙(내부 기둥)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플라톤적 이상을 넘어, 이상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한 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고찰을 반영한다. 이는 미스가 단지 질서의 개념뿐만 아니라, 질서의 적용이라는 문제와 씨름했음을 보여준다.

 

요소 재료 그리드와의 관계 바닥과의 구축적 디테일 의도 분석 (노이마이어적 해석)
십자형 기둥 크롬 도금 강철 엄격한 순응 (최소 한 축) 바닥 평면을 관통, 기초 암시 불변의 보편 법칙으로서의 구조를 대표. '뼈대'. 11
오닉스/대리석 벽 오닉스 도레, 티니안 대리석 의도적 이탈 / 비대칭 바닥 평면 위로 떠 있음 (틈) 자유롭고 예술적이며 공간을 정의하는 외피를 대표. 13
유리 벽 투명, 반투명, 유색 유리 의도적 이탈 / 비대칭 최소한의 채널에 고정, 평면성 강조 공간을 감싸기보다 매개하는 스크린 또는 레이어를 대표. 17
트래버틴 바닥/기단 로만 트래버틴 그리드 자체 기준이 되는 평면 건축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형이상학적 토대, 오르드눙 자체를 대표. 19

 

제2장 자유 평면과 지각적 공간의 레이어링



2.1 "피부와 뼈(Skin and Bones)": 기술적 전제조건

 

미스의 공간 혁명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혁신은 바로 철골 구조다. 이 구조는 '뼈대(구조)'와 '피부(외피)'의 분리를 가능하게 했다.18 이것이 벽을 해방시키고 '자유 평면(free plan)'을 가능하게 한 근본 원리다.11 미스는 현대적 구축 방식을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를 현대라는 시대의 진정한 표현이자, 자동차나 비행기와 같은 사회의 새로운 운동의 자유를 반영하는 새로운 종류의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했다.8

 

2.2 오브제로서의 벽: 외피에서 공간 조절 장치로

 

벽이 하중 지지 역할에서 해방되면서, 그것은 자율적인 평면, 즉 '벽-오브제(wall-objet)'로 변모한다.13 벽돌조 전원주택(1923)이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같은 프로젝트에서 벽은 밀폐된 방을 만드는 대신, 움직임을 유도하고, 시야의 틀을 잡고, 영역을 규정하는 추상적인 평면이 된다.12 미스의 말처럼, 이는 "일련의 방들"이 아니라 "일련의 공간적 효과들"을 만들어낸다.12 이는 '흐르는 공간(flowing space)'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이러한 평면적 요소들에 의해 분화되고 조절되는 연속적인 공간장을 의미한다.13

 

2.3 물질적 평면으로서의 유리: 중첩된 시각의 건축

 

이 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스의 유리 벽을 '공허(void)'나 '비물질화된' 표면으로 보는 일반적인 해석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11 대신, 유리를 복합적이고 매우 특수한 물질적 평면으로 분석할 것이다.

미스는 투명 유리, 반투명(불투명) 유리, 유색(녹색, 회색) 유리, 반사 유리 등 다양한 종류의 유리를 사용하여 풍부하고 다층적인 지각 경험을 창조했다.12 미스의 건물에서 유리는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투명한 창이자, 외부 풍경과 내부 공간을 표면에 중첩시키는 반사 거울이며, 특정한 물질적 존재감을 지닌 단단한 유색 평면(벽)이다.17 이러한 시각의 레이어링은 내부, 외부, 반사, 그리고 실재가 모두 동시에 지각되는 '공간적 동시성(spatial simultaneity)'을 만들어낸다.11 이것이 바로 그의 '흐르는 공간'의 본질이다. 그것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 시각 정보로 가득 찬 밀도 높은 장이다. 미스 자신이 언급했듯이, 유리에서 중요한 것은 "반사의 유희"다.17

미스의 후기 미국 작업에서 발전된 '보편 공간(Universal Space)'의 개념(예: 크라운 홀)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다층적 복잡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궁극적으로 추상화한 것이다. 그는 공간 내부를 조절하기 위해 여러 개의 벽-평면을 사용하는 대신, 유리 외피로 정의되는 단일하고 장애물 없는 볼륨을 창조했다. 이제 레이어링은 공간 내부가 아니라 경계 조건, 즉 유리벽 자체로 완전히 이전된다. 이 유리벽이 이제 반사, 투명성, 그리고 외부 세계의 프레이밍이라는 모든 복잡한 상호작용을 담게 된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 더 큰 볼륨 내부에 독립된 벽들의 복잡한 구성으로 흐르는 공간을 구현했다면 11, 크라운 홀은 모든 내부 기둥과 벽을 제거하여 하나의 거대한 개방된 공간으로 '보편 공간'을 달성한다.11 표면적으로 이는 복잡성에서 단순성으로의 이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잡한 공간 경험을 창출하는 기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재배치된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오닉스와 대리석 벽이 공간을 레이어링하는 데 기여하지만, 크라운 홀에서는 거대한 유리벽이 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다. 크라운 홀의 경험은 유리를 통한 외부 풍경의 지각, 유리에 비친 내부의 반사, 그리고 유리 외부에 있는 구조 프레임의 강력한 존재감에 의해 지배된다. '공간적 효과'는 이제 전적으로 건물의 가장자리에서 생성된다. 따라서 보편 공간은 자유 평면의 논리적 귀결이다. 즉, 모든 매개적이고 중첩적인 복잡성을 '피부' 자체에 집중시킴으로써 내부의 최대 자유를 달성하는 것이다.

 

제3장 구축적 표현과 재료의 정신적 진실



3.1 "구축의 예술"로서의 텍토닉스

 

이 장에서는 텍토닉스(tectonics)를 단순한 구축 행위가 아니라, 그것의 시적이고 표현적인 명료화로 정의할 것이다.8 미스에게 구축은 "시대의 가장 진실한 수호자"였으며, 그것의 정직한 표현이 '바우쿤스트'의 기초였다.7 이 섹션에서는 미스가 어떻게 구축을 '말하게' 하여 건물이 어떻게 서 있고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분석할 것이다.

 

3.2 두 가지 디테일 이야기: 파빌리온의 기둥 대 벽

 

이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바닥 디테일에 대한 미시적 분석이다.

 

기둥의 연결

 

크롬 도금된 십자형 기둥은 마치 트래버틴 바닥을 꿰뚫는 것처럼 디테일이 처리되어 있다. 돌은 기둥의 윤곽에 맞춰 정밀하게 절단되어, 바닥 평면을 통과하여 아래의 기초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구조 부재라는 구축적 표현을 만들어낸다. 이는 하중, 안정성, 영속성의 표현이다.12

 

벽의 연결

 

반대로, 돌과 유리 벽은 바닥에서 뚜렷한 틈(reveal)이나 간격을 두고 디테일이 처리된다. 이들은 종종 후퇴된 채널이나 그림자 선과 함께 트래버틴 위로 살짝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디테일은 벽이 하중을 받지 않는, 공간 속에 삽입된 평면임을 강조한다. 이는 구조적 지지가 아닌, 가벼움, 자유, 그리고 공간 분할의 구축적 표현이다.

이 비교는 미스가 자신의 건축 시스템 내에서 각 요소의 근본적인 역할을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구축적 디테일을 사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디테일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건축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들이다.

 

3.3 "추상성에 대한 등가물"로서의 재료성

 

미스가 극도로 미니멀한 형태 안에 황금빛 오닉스, 녹색 대리석, 광택 나는 크롬과 같은 풍부하고 호화로운 재료를 사용한 것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 섹션에서는 노이마이어의 분석을 바탕으로 이것이 의도적인 전략임을 주장할 것이다.8 형태의 추상성(순수한 평면과 그리드)은 재료의 강렬한 감각적, 물리적 존재감과 균형을 이룬다. 재료의 풍부함은 추상성이 불모의 상태가 되는 것을 막고, 공간에 분위기 있고 "신체적인" 질을 부여한다.8 대리석의 결과 오닉스의 깊은 색감은 합리적이고 인공적인 기하학에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대위법을 제공한다.

 

3.4 시그램 빌딩 I-빔의 "정직한 거짓말"

 

보고서는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 파사드의 청동 I-빔 분석으로 절정에 이른다. 미국의 화재 법규는 실제 철골 구조를 콘크리트로 감싸도록 요구했다.24 문자 그대로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접근법은 콘크리트 건물을 낳았을 것이다. 대신 미스는 비구조적인 청동 I-빔을 외부에 부착했다.24 이 행위는 '바우쿤스트'의 궁극적인 표현이다.

I-빔은 물질적으로는 '비사실적'이다(하중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건물의 본질인 철골 구조의 이념을 표현하기 때문에 구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진실'하다. 그것들은 건물의 내적 논리를 가시화한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노예적인 고수보다 건축적 이념의 표현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건축(Bau)'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Kunst)'이다. 이는 미스에게 건축의 진실이 단지 물질적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원리를 표현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미스의 비구조적 I-빔 적용은 단순하거나 교조적인 기능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다. 이는 그의 모더니즘이 순진한 '재료에 대한 진실성'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이념에 대한 진실성'에 관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는 '시대의 의지'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가능하게 한 정신임을 이해했다. 기술의 물리적 현현이 숨겨져야만 했을 때, 그는 그 정신이 가시적으로 남을 수 있도록 새로운 구축적 언어를 발명했다. 시그램 빌딩의 I-빔이 구조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모더니즘 역사에서 잘 알려진 모순이다.24 일반적인 해석은 수직성과 리듬감을 더하기 위한 장식적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이마이어의 틀은 미스가 장식과 형식주의를 거부했음을 강조하므로 3, 이는 올바른 답이 될 수 없다. 원인은 화재 법규라는 외부적 제약이었다.24 미스의 이상은 실제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해결책인 부착된 I-빔은 장식이 아니라 상징이다. 그것은 숨겨진 구조 프레임이라는 기의를 가리키는 기표다. 이 행위는 건축 프로젝트를 단순한 건물에서 소통 행위로 격상시킨다. 미스는 문자 그대로의 구조와 구조의 표현을 분리해야만 했다. 이는 그의 사고 체계 내의 위계를 드러낸다. 즉, 구조적 이념의 표현이 구조적 재료의 문자 그대로의 노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바우'를 넘어선 '바우쿤스트'의 본질이며, 모더니즘에 대한 매우 정교하고 비독단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결론: 건축과 이념의 통합

 

이 마지막 장에서는 앞선 장들의 논의를 종합할 것이다. 미스의 건축은 일관된 원칙들을 통해 세심하게 구현된, 통일성 있는 철학적 프로젝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드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질서('오르드눙')를 확립한다. 레이어링된 자유 평면은 현대적 조건을 반영하는 새로운 유형의 유동적이고 지각적인 공간을 창조한다. 재료의 구축적 표현은 이 추상적 시스템에 감각적 현실을 불어넣고 그 근본 논리를 전달한다.

형식주의를 넘어서, 이 결론은 노이마이어의 연구에 근거하여 미스의 전 생애가 "목표로서의 형태"라는 개념, 즉 형식주의에 대한 투쟁이었음을 최종적으로 주장할 것이다.3 그의 목표는 결코 특정 스타일(직선적, 미니멀리즘)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현대 생활을 위한 의미 있는 틀, 즉 "규정하지만 가두지 않는(defining but not confining)"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었다.8

보고서는 제목으로 돌아가 마무리된다. '꾸밈없는 언어'는 진정한 건축이 그 시대와 목적을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자명해야 한다는 미스의 신념을 가리킨다. 그리드, 레이어, 재료에 대한 그의 엄격하고 시적인 숙달을 통해, 미스는 노이마이어가 주장하듯 건물 자체가 텍스트가 되는 건축 형태를 성취했다. 심오한 이념들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창조한 조용하고 질서 있으며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 속에 내재하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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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ies van der Rohe, Architectural Visionary | National Trust for Historic Preservation,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savingplaces.org/stories/mies-van-der-rohe-architectural-visionary
  3. Abstracting Mies - Fritz Neumeyer | PDF | Martin Heidegger - Scribd,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scribd.com/document/269831374/Abstracting-Mies-Fritz-Neu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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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Fritz Neumeyer translated by Mark Jarzombek The MIT Press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 Monoskop,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monoskop.org/images/4/47/Neumeyer_Fritz_The_Artless_Word_Mies_van_der_Rohe_on_the_Building_Art.pdf
  7. PROCEEDINGS OF THE SOCIETY OF ARCHITECTURAL ...,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msd.unimelb.edu.au/sahanz-2016/papers/Fornari_Colombo_Reconsidering-Mies-van-der-Rohes-Concept-of-True-Architecture-Through-its-Philosophical-Foundations.pdf
  8. View of Fritz Neumeyer,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docomomojournal.com/index.php/journal/article/view/289/198
  9. Fritz Neumeyer INTERVIEW,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docomomojournal.com/index.php/journal/article/download/289/198/202
  10. On the Setting of the Inner Space in the Court-house Projects of Mies van der Rohe,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75214646_On_the_Setting_of_the_Inner_Space_in_the_Court-house_Projects_of_Mies_van_der_Rohe
  11. Mies van der Rohe Space, Material and Detail - Enquiry The ARCC Journal for Architectural Research,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arcc-journal.org/index.php/repository/article/download/461/365/1611
  12. The Barcelona Pavilion - 20th-CENTURY ARCHITECTURE,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architecture-history.org/architects/architects/MIES%20VAN%20DER%20ROHE/objects/1929,%20The%20Barcelona%20Pavilion,%20Barcelona,%20Spain.html
  13. A Study on Mies van der Rohe's Wall as “Objet” and its Spatial Characteristics,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tandfonline.com/doi/pdf/10.3130/jaabe.4.9
  14. Mies van der Rohe: Meditations on a Plan - Architectures/Models,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architecturesmodels.com/2024/06/30/mies-van-der-rohe-meditations-on-a-plan/
  15. The Barcelona Pavilion: Mies van der Rohe's Modernist Manifesto - ArchEyes,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archeyes.com/the-barcelona-pavilion-an-insightful-exploration-of-mies-van-der-rohes-modernist-manifesto/
  16. (PDF) The ideological sources of Mies van der Rohe's architecture ...,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69093564_The_ideological_sources_of_Mies_van_der_Rohe's_architecture_Comments_on_the_publication_of_Letters_from_Lake_Como_by_Romano_Guardini
  17. in situ: I Gave Myself a Shock: Mies and the Pavilion - University of Calgary,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ucalgary.ca/ev/designresearch/publications/insitu/copy/volume2/history/Kevin_Harrington/index.html
  18. Ephemeral Transparency: Glass as a Reflective Screen and Opaque Veil in the New National Gallery - Redalyc,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redalyc.org/journal/3416/341653836009/html/
  19. Seagram: Union of Building and Landscape | Architexts Association,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architextsassociation.wordpress.com/2013/06/01/seagram-union-of-building-and-landscape/
  20. neumeyer - Mies van der Rohe building art,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www.columbia.edu/cu/gsapp/BT/GATEWAY/FARNSWTH/neumeyer.html
  21. Ludwig Mies van der Rohe: Architect of the Modern Age - - Taproot Therapy Collective,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gettherapybirmingham.com/ludwig-mies-van-der-rohe-architect-of-the-modern-age/
  22. From Garden Design Approach to Spatial Configuration: The Development of the Architektonischer GartenConcept,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acsa-arch.org/proceedings/Annual%20Meeting%20Proceedings/ACSA.AM.106/ACSA.AM.106.20.pdf
  23. Tectonic_Visions - Architecture, Design and Conservation,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adk.elsevierpure.com/files/66103642/Tectonic_Visions_1.pdf
  24. Seagram Building | Architectuul,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architectuul.com/architecture/seagram-building
  25. Mies van der Rohe's Inspiring I-beams - joseph noble,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josephnoble.com/inspiration/mies-van-der-rohes-inspiring-beams/
  26. Seagram Building Architecture: The Glass-and-Steel Icon - Xpress Rendering,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xpressrendering.com/blog/seagram-building-architecture/
  27. The Architecture of Seagram Building in New York City (NYC) - Novatr, 10월 26, 2025에 액세스, https://www.novatr.com/blog/architecture-of-seagram-building-in-new-york-city

 

 

서론: 건축가의 손을 넘어서

 

어느 한 건축가의 작업 전체에 부과된 통일성은 정교하게 연출된 겉치레(pretense)이거나, 스스로의 창조적 가능성을 제약하는 자기검열(self-censorship)의 결과라는 명제는 현대 건축 비평의 핵심을 관통한다. 소위 '시그니처 스타일'이라 불리는 것은 창조적 천재성의 순수한 발현이라기보다는, 비판적 검토가 요구되는 문제적 구성물이다. 여기서 '겉치레'는 시장성 있는 미학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홍보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자기검열'은 일단 확립된 브랜드 정체성에 부합하기 위해 창의적 가능성의 범위를,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축소시키는 과정을 지칭한다. 이러한 통일성의 신화를 해체하고 그 이면에 작동하는 힘을 드러내기 위해, 본 보고서는 문학 연구에서 혁명적 방법론으로 평가받는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의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를 건축 비평의 새로운 분석 틀로 도입하고자 한다.

모레티의 접근법은 작가의 의도나 개별 텍스트의 상징적 의미라는 전통적 분석의 베일을 걷어내고, 창작물을 형성하는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힘을 관찰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1 이 '거시적(macroscopic)' 렌즈를 건축에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건축가가 스스로 내세우는 서사와는 구별되는, 그의 작업이 남긴 데이터 기반의 실체, 즉 '자료의 무의식(unconscious of the material)'을 관측할 수 있다.3 이는 건축가의 의도를 넘어서 그의 작업을 형성한 시장의 압력, 기술의 제약, 사회적 힘의 역학 관계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전개된다. 먼저, 모레티의 '멀리서 읽기'가 문학 연구에 가져온 혁신을 심도 있게 고찰하며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다. 다음으로, 이 이론을 건축 분석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한다. 이어서, 구축된 프레임워크를 통해 소위 '스타키텍트(starchitect)'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시그니처 스타일'이 어떻게 겉치레와 자기검열의 산물이 되는지를 사례를 통해 논증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자료의 무의식'이 건축 비평과 역사에 던지는 심오한 함의를 탐구하며 결론을 맺는다.

 

1부: 멀리서 읽기 혁명: 프랑코 모레티와 문학 시스템

 

건축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기에 앞서, 그 방법론적 원천이 되는 프랑코 모레티의 이론적 체계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장에서는 '멀리서 읽기'가 기존 문학 비평과 어떻게 단절하며, 문학을 개별 텍스트의 총합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그의 관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탐구한다.

 

1.1 '신학'에서 '과학'으로: 가까이 읽기와 멀리서 읽기

 

전통적인 문학 비평의 주류를 이루었던 '가까이 읽기(close reading)'는 단일 텍스트에 대한 강도 높고 미시적인 탐구를 의미한다.4 이 방법론은 텍스트의 내부 구조, 단어의 선택, 문장의 리듬 등 내재적 요소에 집중하여 그 의미의 다층성을 밝혀내는 데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모레티는 이러한 접근법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소수의 신성시되는 '정전(canon)'에 막대한 해석적 에너지를 쏟아붓는 가까이 읽기는 본질적으로 '세속화된 신학(secularized theology)'과 다름없다.1 이는 실제로 생산된 문학 작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텍스트에만 과도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문학사의 전체 지형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6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모레티가 제시한 '멀리서 읽기'는 가까이 읽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론적 태도를 취하는 방법론이다.7 모레티의 핵심 통찰은 '거리'가 지식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의 조건(a condition of knowledge)'이 된다는 점에 있다.6 개별 텍스트로부터 한 걸음 물러섬으로써, 우리는 "텍스트 자체보다 훨씬 작거나 훨씬 큰 단위들, 즉 장치, 주제, 비유, 혹은 장르와 시스템"을 비로소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9 이 관점에서 개별 텍스트는 그 자체로 완결된 의미의 총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그 의미가 규정되는 하나의 노드(node)로 전환된다.

이러한 거시적 관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위대한 무명작들(the great unread)', 혹은 모레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학의 도살장(the slaughterhouse of literature)'에 대한 주목이다.1 이는 정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다수의 문학 작품들을 지칭한다. 모레티는 문학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생존자가 아닌, 이 방대한 전체 코퍼스(corpus)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11 이는 필연적으로 개별 작품을 '읽는' 행위에서 벗어나,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계산하고, 집계하고, 분석하는' 행위로의 전환을 요구한다.7

 

1.2 형태의 유물론적 개념: 시스템으로서의 문학

 

모레티에게 있어 '역사의 동력'은 개별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개별적 의미가 부차적인 것이 되는 거시적 차원에서 작동한다.1 그의 목표는 문학을 비인격적이고 물질적인 힘에 의해 형성되는 '집합적 시스템(collective system)'으로 파악하는 것이다.10

이러한 관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18세기 영국 소설 제목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1 그는 정량적 데이터를 통해 소설 제목이 점차 짧아진 현상이 개별 작가들의 미학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소설 시장의 성장과 정기 간행물의 등장이라는 외부적, 시스템적 압력의 결과임을 입증했다. 이는 형태가 어떻게 외부의 힘에 의해 조형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다. 마찬가지로, 특정 장르의 흥망성쇠 역시 무작위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장의 포화와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이라는 주기적인 패턴에 의해 추동된다.12

모레티는 이러한 시스템적 패턴을 가시화하기 위한 추상적 모델로 '그래프, 지도, 나무(Graphs, Maps, and Trees)'라는 세 가지 분석 도구를 제시한다.10

  • 그래프(Graphs): 장르의 흥망성쇠와 같은 정량적 역사를 시각화하여, 이를 더 넓은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과 연결한다.10 예를 들어, 특정 장르 소설의 출간 종수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역사적 변곡점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
  • 지도(Maps): 텍스트 내의 공간적 논리를 분석하여, 지리와 사회적 공간이 국가 권력이나 경제적 변화와 같은 더 큰 힘에 의해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드러낸다.10 지도는 텍스트를 몇 개의 추상적 요소로 '환원'하고 서사적 흐름에서 '추상화'함으로써 분석을 위한 준비를 마치며, 이를 통해 하위 수준에서는 보이지 않던 패턴을 드러낸다.10 모레티에게 형태는 곧 '힘의 다이어그램(diagram of forces)'이다.10
  • 나무(Trees): 진화생물학에서 차용한 이 모델은 '자유간접화법'과 같은 형식적 장치나 플롯 요소의 계보를 추적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태가 어떻게 분기하고 경쟁하는지를 모델링한다.10

모레티의 작업은 단순히 디지털 도구의 활용을 촉구하는 것을 넘어, 창조적 생산에 대한 근본적인 재이론화를 시도한다. 전통적 관점이 위대한 작가나 건축가를 새로운 형태의 원천으로 보는 반면, 모레티의 데이터는 시스템(예: 소설 시장)이 선택적 압력을 생성함을 시사한다.1 이 압력에 부합하는 형태(예: 짧은 제목)를 우연히 생산한 작가들이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분야 전체가 그 방향으로 이동한다. 변화의 동인은 개별 천재들의 집단적 결단이 아니라, 특정 형질을 선호하는 환경적 압력이다. 이는 변화의 주체를 개인에서 시스템 자체로 전환시키며, 건축사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영웅주의적 '거장' 서사에 대한 직접적이고 강력한 이론적 도전을 제기한다.

 

2부: 텍스트에서 구축술로: 건축의 멀리서 읽기를 위한 프레임워크

 

이 장에서는 모레티의 문학 이론을 건축 분석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론적 교량을 구축한다. 문학적 개념들을 건축 분석에 적용 가능한,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프레임워크로 변환하는 과정을 통해, '멀리서 읽기'가 어떻게 건축 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2.1 건축 코퍼스의 정의: 건축가의 '위대한 무명작들'

 

건축가에 대한 진정한 '멀리서 읽기'는 그의 대표적인 준공작, 즉 정전에만 국한될 수 없다. 건축 코퍼스는 그의 '위대한 무명작들'을 포함하도록 재정의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실현되지 않은 현상설계안, 폐기된 계획안, 초기 스케치, 자재 사양서, 프로젝트 설명서, 심지어 홍보용 텍스트까지 포함된다.16 이 방대한 데이터셋은 시스템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돌연변이를 포함하여 한 건축가의 생산물 전체 스펙트럼을 대표한다.

이러한 코퍼스는 매우 이질적인 데이터 유형으로 구성된다. 도면, 렌더링, 사진과 같은 이미지 데이터, 프로젝트 개요서, 비평, 선언문과 같은 텍스트 데이터, 그리고 프로젝트 예산, 자재 물량, 지리적 위치와 같은 정형 데이터가 그것이다. 따라서 분석은 필연적으로 여러 양식의 데이터를 동시에 다루는 다중모드(multi-modal) 접근법을 요구한다.17

 

2.2 모델의 운용: 건축을 위한 그래프, 지도, 나무

 

모레티의 모델들은 건축 코퍼스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때 그 분석적 힘을 발휘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정량화 가능한 분석 방법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 그래프(Graphs): 건축가의 경력 전반에 걸쳐 정량화 가능한 형태적 속성의 진화를 도표로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간에 따라 곡면이 차지하는 비율, 입면의 투명/불투명 면적비, 혹은 특정 재료(예: 티타늄,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 빈도를 그래프로 그려볼 수 있다.17 이러한 경향은 자재 비용, 특정 소프트웨어의 출시일(예: 게리의 경우 CATIA) 21, 또는 세계 경제 주기와 같은 외부 데이터와 상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
  • 지도(Maps): 단일 건물의 대지 계획 분석을 넘어선다. '멀리서 보는 지도'는 한 건축가의 모든 프로젝트를 지리적으로 배치하여 도시 중심부, 특정 경제 구역, 또는 정치 체제와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포함한다. 소위 '글로벌' 건축가의 작업이 지역적 맥락과 무관하게 특정 경제 유형(예: 고급 콘도, 문화적 랜드마크)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는가? 22 이는 그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사회-경제적 지형을 드러낸다.
  • 나무(Trees): 특정 디자인 요소나 형태적 아이디어의 '계통'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특정 입면 분절 방식이나 공간 구성이 처음 등장하여 후속 프로젝트들에서 어떻게 다른 형태로 '분기'하고, 어떤 '계보'는 지배적이 되고 다른 것들은 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나무 다이어그램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스타일의 진화 과정과 잠재적인 자기검열의 메커니즘을 시각화한다.

 

2.3 관찰의 기술: 건축 분석을 위한 계산적 방법론

 

이러한 프레임워크는 이론적 환상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로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이는 계산 건축 분석(computational architectural analysis)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등장으로 뒷받침된다.24

이 방법론의 핵심 기술은 '건축 스타일 메트릭스(Architectural Style Metrics, ASM)' 개념이다. 이는 건축 스타일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방법론이다.17 CLIP(Contrastive Language-Image Pre-training)과 같은 다중모드 AI 모델은 건축물 이미지로부터 곡률, 채도, 투명성, 대칭성과 같은 시각적 특징을 '인식'하고 정량화하도록 훈련될 수 있다.17 이 기술은 건축의 시각적이고 구축적인 세계를 '멀리서 읽기'에 필요한 기계 판독 가능 데이터로 변환하는 핵심 열쇠다.

기존 연구들이 AI를 스타일 분류 29나 건물 성능 최적화 31에 사용하는 반면, 본 보고서는 그 분석적 힘을 비판적 도구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이 건물이 자하 하디드의 스타일인가?"라는 질문에서 "그녀의 500개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하디드다움'의 통계적 분산은 어떠하며, 그 분산은 프리츠커상 수상 이후 감소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첫째, 자하 하디드와 같은 건축가들이 인식 가능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32 둘째, 비평가들은 이 스타일이 반복적으로 변했다고 주장한다.23 셋째, ASM이나 CLIP과 같은 새로운 AI 도구는 스타일적 특징을 정량화할 수 있다.17 넷째, 따라서 우리는 건축가 코퍼스의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이러한 정량화된 특징들의 시계열 데이터셋을 생성할 수 있다. 다섯째, 이 데이터셋에 대한 통계 분석을 수행하여 시간 경과에 따른 형태 언어의 다양성(예: 표준편차)을 측정할 수 있다. 여섯째, 이 다양성 지표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감소는 '자기검열'이나 브랜드 강화라는 사용자의 주장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증거를 제공하며, 주관적 비평을 데이터 기반 분석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2.4 제안 표: 건축 비평의 패러다임

 

다음 표는 본 보고서의 핵심적인 방법론적 주장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전통적인 해석적 '가까이 읽기' 접근법과 제안된 정량적, 시스템적 '멀리서 읽기' 접근법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추상적인 문학 용어를 구체적인 건축 사례로 변환함으로써, 이 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며 보고서의 나머지 부분을 따라갈 수 있는 명확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특징 전통적 건축 비평 (가까이 읽기) 계산적 건축 분석 (멀리서 읽기)
분석 단위 개별 건물 또는 프로젝트; 정전적 작품. 전체 코퍼스: 준공/미준공 프로젝트, 도면, 텍스트.
방법론 정성적, 해석적, 역사적, 현상학적. 정량적, 계산적, 통계적, 데이터 기반.
초점 대상 건축가의 의도, 미학적 표현, 상징적 의미. 시스템적 패턴, 형태적 진화, 시장의 힘, 제약 조건.
규모 미시적: 소수 사례에 대한 심층 분석. 거시적: 수천 개 데이터 포인트의 추상적 모델링.
목표 의미의 해석과 가치의 평가. 숨겨진 구조와 객관적 경향의 식별.
핵심 질문 "이 건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작업 전체를 생성하는 시스템적 규칙은 무엇인가?"

 

3부: 자기검열로서의 시그니처: 스타키텍트 정전의 해체

 

이 장에서는 앞서 구축한 프레임워크를 적용하여, '시그니처 스타일' 현상을 겉치레와 자기검열의 한 형태로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스타키텍트의 작업에 내재된 통일성이 어떻게 시장의 압력과 브랜드 관리의 논리에 의해 구성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3.1 건축가의 정전과 통일성을 향한 압력

 

'시그니처 스타일'은 건축가가 스스로 창조한 정전(canon)으로 볼 수 있다.35 이 인식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미학은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하며, 시장과 미디어가 건축가의 작업을 쉽게 이해하고 소비하도록 만든다.36 그러나 이러한 가독성을 향한 추동력은 일관성에 대한 엄청난 압력을 생성하며, 결과적으로 브랜드에 부합하지 않는 실험을 배제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이는 명백한 자기검열의 한 형태이다.37 흥미롭게도, 차세대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고도로 개인주의적"이고 "개인화된 시그니처 스타일의 건축"을 거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39

 

3.2 사례 연구: '파라메트릭 슈즈' - 자하 하디드와 파트리크 슈마허

 

  • 서사 (겉치레): 공식적인 서사는 자하 하디드의 스타일을 새로운 사회적 복잡성과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필연적인 진화로 묘사한다.40 이는 파트리크 슈마허가 제창한 '파라메트릭시즘(Parametricism)'이 다음 시대의 위대한 양식이 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절정에 달한다.41 이것이 바로 '겉치레'의 측면이다.
  • 비평: 이러한 서사는 그녀의 후기 작업, 특히 회사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의 작업이 맥락과 무관하게 "세계 어디에나 놓을 수 있는 거대한 파라메트릭 신발"과 같은 반복적인 공식이 되었다는 비판과 대치된다.23 기능적으로 의심스럽고, 문제 해결보다는 브랜드 광고에 더 가깝다는 지적이다.23 반복을 혐오했던 그녀의 초기 태도 33는 후기 작업의 인지된 균일성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 멀리서 읽기 접근: '멀리서 읽기'는 이러한 상반된 주장을 데이터로 검증할 수 있다. '그래프' 분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용된 기하학적 원형의 다양성을 추적할 수 있다. '나무' 분석은 그녀의 형태 언어의 계보를 추적하여, '스타일의 나무'가 경력 후반으로 갈수록 분기가 줄어들고 더 선형적으로 변하는지를 식별할 수 있다. 이는 파라메트릭시즘이 진정한 진화인지, 아니면 성공적인 공식의 성문화인지를 평가할 데이터를 제공할 것이다.

 

3.3 사례 연구: '스테인리스 스틸 덩어리' - 프랭크 게리

 

  • 서사: 프랭크 게리의 작업은 피카소와 같은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으로 제시된다.44 그는 재료와 컴퓨터 지원 설계(CATIA)에 대한 실험을 통해 모더니즘의 관습을 거부하고 독특한 조각적 형태를 창조한 선구자로 묘사된다.21
  • 비평: 이는 구겐하임 빌바오의 성공 이후 그의 스타일이 예측 가능한 '스테인리스 스틸 덩어리'의 공식으로 굳어졌다는 광범위한 비판과 충돌한다.46 그의 스타일은 맥락과 인간적 척도를 무시한 채 글로벌 기업을 위한 '성공 공식'이 되었다는 것이다.36
  • 멀리서 읽기 접근: '멀리서 읽기'는 게리의 전체 코퍼스를 분석하여 이러한 인식된 변화를 정량화할 수 있다. ASM 분석은 빌바오 이후 프로젝트들 간의 형태적 유사도를 측정할 수 있다. '지도' 분석은 그가 일부 프로젝트에서 주장하는 맥락적 통합(예: 헤르포르트에서 벽돌 사용) 21이 예외인지 규칙인지, 아니면 탈맥락적인 시그니처 형태를 부과하는 지배적인 패턴과 대조되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3.4 사례 연구: 'Yes is More'의 서사 - 비야케 잉겔스 그룹 (BIG)

 

  • 서사 (겉치레): 비야케 잉겔스가 정교하게 구축한 '실용적 유토피아주의(Pragmatic Utopianism)'와 '쾌락주의적 지속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이라는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47 이 철학은 지속가능성이 희생을 의미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인간 경험을 향상시켜 생태와 경제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22
  • 비평 (그린워싱): 이는 BIG의 지속가능성이 생태적으로 파괴적인 고객 및 산업(예: 쓰레기 소각장, 기후 과학에 적대적인 정권의 개발업자)과 협력하기 위한 외관, 즉 '그린워싱(greenwashing)'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대립한다.22 그들의 접근법은 "기업 정신과 충돌하지 않는 녹색의 외관"을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22
  • 멀리서 읽기 접근: '멀리서 읽기'는 이러한 수사를 넘어선다. BIG의 전체 고객 목록과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데이터셋을 구축하는 작업이 포함될 것이다. '그래프'는 그들의 '지속가능한' 프로젝트와 고객의 주력 산업을 연관시킬 수 있다. '지도'는 그들의 프로젝트가 자원 추출이나 오염 현장과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시각화할 수 있다. 이 데이터 기반 접근법은 그들의 건축이 작동하는 물질적, 경제적 시스템을 드러내고, 그들의 서사적 '겉치레'와 실제 실천 사이의 일관성을 검증할 것이다.

 

4부: 자료의 무의식 드러내기

 

이 결론적 분석 장에서는 앞선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사용자의 핵심 개념인 '자료의 무의식'에 실체를 부여한다. 건축의 '멀리서 읽기'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드러내는지, 즉 건축가의 의식적 의도를 넘어서 그의 작업을 구조화하는 숨겨진 논리와 힘의 정체를 탐구한다.

 

4.1 모순의 패턴: 텍스트 대 구축술

 

'멀리서 읽기'의 핵심적인 발견 중 하나는 건축가가 스스로 표방하는 철학('텍스트')과 그의 작업 전체가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현실('구축술') 사이의 정량화 가능한 간극이다. 건축가의 인터뷰와 선언문을 텍스트 마이닝하여 '지속가능성', '맥락', '커뮤니티'와 같은 핵심 개념의 빈도를 추출하고, 이를 그의 프로젝트에서 얻은 정량적 스타일 및 지리 데이터와 비교함으로써 심오한 모순을 노출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즉, 건축가가 자신이 무엇을 한다고 '말하는가'와 데이터가 그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것 사이의 차이다.

 

4.2 기계 속의 유령: 경로 의존성과 스타일적 경련

 

시스템 이론에서 말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 개념을 도입할 수 있다. '멀리서 읽기'는 초기의, 어쩌면 우연했을지도 모르는 형태적 해법이나 작업 방식(예: 특정 소프트웨어 도구나 모델링 기법에 대한 선호)이 어떻게 시스템에 '고착(locked-in)'되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의식적인 디자인 철학의 결과가 아니라 순수한 관성에 의해 반복된다. 이것은 의도적인 선택이 아니라 디자인 프로세스 자체의 창발적 속성으로서의 '자기검열'이다. 이는 거시적 규모에서만 볼 수 있는 스타일적 '기계 속의 유령(ghost in the machine)'이라 할 수 있다.

 

4.3 형태는 자본을 따른다: 진정한 시스템적 동인

 

이 부분은 궁극적인 유물론적 주장을 제시한다. 사례 연구들을 종합하여, 특히 '스타키텍트' 시대의 건축 스타일 진화는 내적인 예술적 논리보다 시스템적인 경제 및 기술적 힘과 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가설을 세운다. 이 인과 관계의 사슬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1) 시그니처 스타일이 개발된다. (2) 그것이 비평적, 시장적 성공을 거둔다(예: '빌바오 효과'). (3) 이 성공은 상징적 브랜딩을 추구하는 특정 계층의 글로벌 고객(기업, 권위주의 국가, 고급 부동산 개발업자)으로부터 자본을 유치한다.22 (4) 고객들은 끝없는 실험이 아닌 성공한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므로, 이 자본의 유입은 성공적인 공식을 재생산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생성한다. (5) 건축가의 회사는 규모를 확장하고, 시그니처 스타일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작업 흐름에 특화되면서 제도적 관성을 만들어낸다. (6) 그 결과는 인지된 정체와 자기 반복이다. 여기서 '자기검열'은 단지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건축가가 이제 일부가 된 시스템의 구조적 결과물이다. '자료의 무의식'은 바로 건축적 형태로 발현된 글로벌 자본의 논리인 것이다.

 

4.4 건축가의 도살장: 미준공 코퍼스 분석

 

모레티의 '도살장' 개념으로 돌아가 보자.6 건축가의 아카이브에 있는 수많은 미준공 프로젝트들은 결정적인 데이터 포인트다. 어떤 디자인이 '죽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시스템의 선택 압력을 드러낸다. 거부된 디자인들은 더 실험적이었는가? 더 맥락에 민감했는가? 브랜드와 덜 부합했는가? '준공된' 코퍼스와 '미준공된' 코퍼스의 스타일적 특징을 정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건축가의 작업에 부과된 자기검열과 시스템적 제약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를 제공할 수 있다.

 

결론: 건축 비평을 위한 새로운 토대

 

본 보고서의 분석을 종합하면, 한 건축가 스타일의 인지된 통일성은 '멀리서 읽기'라는 거시적이고 정량적인 시선 아래에서 해체되는 취약한 서사임이 분명해진다. 이 접근법은 건축가의 창의성을 무효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형성하는 강력한 시스템적, 경제적, 기술적 네트워크 안에 재위치시키려는 시도이다.

이 방법론은 건축 미디어를 지배하는 '스타키텍트' 중심의, 인물 중심적 담론에 대한 중요한 해독제를 제공한다. 이는 마케팅 서사나 개인적 카리스마에 덜 취약한, 보다 객관적이고 증거에 기반한 비평을 위한 도구를 마련해준다.

결론적으로, 모레티가 "더 합리적인 문학사"를 주창했듯이 10, 건축의 '멀리서 읽기'는 우리가 더 합리적인 건축사를 쓰기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건물을 미학적 성찰의 단일한 대상으로만 보는 것을 넘어, 방대하고 복잡하며 심오한 비밀을 드러내는 시스템 속의 데이터 포인트로 이해하는 역사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건축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미래 건축 비평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토대를 제시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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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Frank O. Gehry : individual imagination and cultural conservatism - 20th-CENTURY ARCHITECTURE,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architecture-history.org/books/Frank%20O.%20Gehry%20-%20individual%20imagination%20and%20cultural%20conservatism.pdf
  45. Frank Gehry Paintings, Bio, Ideas - The Art Story,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www.theartstory.org/artist/gehry-frank/
  46. Gehry: There's a backlash against me : r/architecture - Reddit,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www.reddit.com/r/architecture/comments/pwp1l/gehry_theres_a_backlash_against_me/
  47. Bjarke Ingels: The Architect Who Builds a 'Yes Is More' World | by WaloTep | Medium,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medium.com/@tepwalo07/bjarke-ingels-the-architect-who-builds-a-yes-is-more-world-07dd6538c0b2

 

원글 : https://www.instagram.com/p/DM2g1AMAYeX/?img_index=1

I. 서론: 공허의 미화

 

현대 한국 사회, 특히 도시 중상류층 2세대 사이에서 관찰되는 한 가지 문화 현상은 표면적으로는 ‘스타일 없는 삶’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도로 계산된 미학적 전략이 숨어 있다. 이는 스타일의 부재가 아니라, 탈맥락화된 진정성에 기반을 둔 정교하고 초현실적인(hyperreal) 스타일의 현시다. 이 현상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강렬한 불안을 은폐하면서, 동시에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듯한 태도를 연기하는 계산된 행위이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의 ‘신흥 중산층’ 2세대가 직면한 독특한 계급 재생산의 압박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대는 성공을 위한 경제적, 문화적 조건을 물려받았지만, 이제는 그 지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위태로운 사회적 지형을 탐색해야만 한다.

본고의 핵심 주장은 ‘스타일 없는 삶의 미화’가 계급적 구별 짓기를 위한 지배적인 미학 전략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산업 노동, 토착적(vernacular) 디자인, 디지털 이전 시대의 소박함과 같은 진정성의 상징들을 본래의 맥락에서 분리하고 전유하여, 이를 세련되고 탈물질주의적인 취향의 표식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행위는 일종의 ‘기만’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의식적인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um), 즉 진정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 자체가 진정한 삶의 기호들로 대체되어 버린 상태에 가깝다.

이 보고서는 먼저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와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적 틀을 통해 이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를 제시할 것이다. 이후 한국의 ‘신흥 중산층’이 형성된 사회·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이들이 겪는 계급 재생산의 불안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회적 동력이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사례로서 성수동의 공간 변형, ‘아트테크(Art-tech)’와 수집 문화, 그리고 ‘오늘의집’으로 대표되는 주거 공간의 획일화 현상을 분석하여, 이 ‘스타일 없는 스타일’이 어떻게 작동하며 우리 사회에 어떤 함의를 던지는지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II. 이론적 기반: 자본, 취향, 그리고 실재의 사막

 

이 독특한 한국적 현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본 장에서는 유럽의 사회 이론을 비판적으로 적용하여 분석의 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부르디외의 이론은 이 현상의 사회적 기능, 즉 구별 짓기를 설명하고,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미디어 포화 사회에서 그 취향이 작동하는 기호학적 메커니즘, 즉 초현실성을 설명한다.

 

2.1. 구별 짓기의 논리: 서울의 부르디외

 

피에르 부르디외는 그의 저서 『구별짓기(La Distinction)』에서 취향이 개인의 순수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 계급 구조를 재생산하고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기제임을 밝혔다.1 그의 이론은 한국 중상류층 2세대의 미학적 실천을 이해하는 데 강력한 설명력을 제공한다. 부르디외는 개인이 소유한 자본을 경제 자본, 사회 자본, 그리고 문화 자본으로 구분했다.3 이 중 특히 중요한 것은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으로, 이는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4

첫째, 체화된(embodied) 문화 자본은 가정 환경과 교육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몸에 밴 태도, 말투, 취향, 교양 등을 의미한다.4 이는 마치 제2의 천성처럼 느껴지며, 특정 사회적 ‘장(field)’에서 ‘게임의 감각(feel for the game)’을 발휘하게 한다. 중상류층 2세대는 부모 세대로부터 이러한 자본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아, 고급 문화 공간이나 트렌디한 장소를 어색함 없이 누비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둘째, 객관화된(objectified) 문화 자본은 책, 예술 작품, 희귀 수집품 등 문화적 가치를 지닌 물질적 대상을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4 그러나 이 자본은 단순히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가치를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체화된 문화 자본이 전제될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값비싼 바이올린을 소유하고 있어도 연주법을 모르거나 그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단순한 과시품에 불과한 것과 같다.4

셋째,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문화 자본은 학위나 자격증처럼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인정받는 자본이다.4 한국 사회에서 명문 대학 졸업장은 신흥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해왔으며, 이는 사회적 지위를 보증하는 강력한 기호로 작동한다.5

이러한 자본들은 개인의 아비투스(habitus), 즉 사회적으로 습득된 성향 체계를 형성한다.2 아비투스는 개인이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구조화하며, 특히 미적 취향의 선택에 깊이 관여한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아비투스에 부합하는 ‘고급’ 취향을 정의하고, 이를 통해 다른 계급과 자신들을 구별 짓는다. 이러한 과정은 일종의 **상징 폭력(symbolic violence)**으로 이어진다.1 지배 계급의 취향은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좋은 취향’으로 포장되어 사회 전체에 강요된다. ‘스타일 없는 삶’이라는 미학 역시 겉보기에는 소박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올바르게’ 연출하기 위해 상당한 경제적·문화적 자본을 요구한다. 이로써 이 미학은 계급적 위계를 은밀하게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2.2. 시뮬라크르의 선행: 보드리야르와 초현실적 한국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가 실재(reality)보다 실재의 기호와 모델이 더 중요해진 **초현실(hyperreality)**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7 그의 이론은 한국 중상류층 2세대가 소비하는 취향의 본질이 실재와의 연관성을 상실한 기호의 유희임을 드러낸다. 보드리야르는 기호(sign)가 실재와의 관계를 잃어가는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했다.9

  1. 1단계 (충실한 복제): 기호는 깊은 실재를 반영하는 충실한 이미지다. 예컨대, 지도는 영토를 정확하게 재현한다.
  2. 2단계 (실재의 왜곡): 기호는 실재를 감추고 왜곡하는 불충실한 복제물이다. 지도는 영토의 특정 측면을 과장하거나 은폐한다.
  3. 3단계 (실재의 부재 은폐): 기호는 원본 없는 복제물, 즉 **시뮬라크르(simulacrum)**가 된다. 기호는 실재를 재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참조할 원본(실재)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보드리야르가 ‘마법의 질서’라 칭한 단계로, 모든 의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4. 4단계 (순수한 시뮬라크르): 기호는 어떠한 실재와도 관련이 없으며, 오직 다른 기호들만을 참조한다. 이것이 바로 초현실의 단계로,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완전히 소멸한다.

본고에서 분석하는 문화 현상들은 주로 3단계와 4단계에 속한다. 예를 들어, 성수동의 ‘인더스트리얼 시크(industrial chic)’ 카페는 실제 산업 현장의 노동이나 생산 과정을 참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산업의 ‘부재’를 은폐하며, 오직 전 세계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인더스트리얼 시크’라는 다른 이미지들만을 참조할 뿐이다.8 이는 “원본도 실재도 없는 실재”, 즉 초현실을 창조한다.7 이 초현실 속에서, 세련된 취향의 삶을 연출한 시뮬레이션은 그 어떤 진정한 경험보다 더 ‘실재처럼’ 느껴지고 더 바람직한 것이 된다.10

부르디외의 이론이 취향의 사회적 기능(구별 짓기)을 설명한다면,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미디어로 포화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그 취향이 작동하는 기호학적 메커니즘(초현실성)을 설명한다. 이 둘을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초현실적 아비투스(Hyperreal Habitus)’라는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실재하는 사회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아비투스가 아니라, 미디어와 기호, 상징으로 구성된 초현실 속에서 형성된 아비투스다. 중상류층 2세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아비투스를 통해 자신을 구별 짓고자 하는 욕망을 갖지만 3, 그들이 참조할 수 있는 ‘진정한’ 대상(예: 실제 노동 계급의 삶, 산업화 이전의 장인 정신)은 이미 미디어 이미지에 의해 대체되거나 사라졌다.8 따라서 그들의 미학적 선택은 ‘깊은 실재’의 복제가 아니라, 다른 시뮬레이션을 참조하는 시뮬레이션이 된다. 이 연기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실재라고 받아들이는 공유된 초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급 표식으로서 성공적으로 기능한다. 이 현상의 ‘기만’은, 계급 구별 짓기라는 진실이 그 미학 자체에는 어떠한 근원적 실재도 없다는 거짓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에 있다.

 

III. 불안한 상속자들: ‘헬조선’에서의 사회적 재생산

 

이론적 틀을 한국의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에 적용할 때, 취향의 연출이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안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 장에서는 한국 신흥 중산층의 형성과 그 2세대가 겪는 딜레마, 그리고 ‘수저계급론’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담론을 통해 이들의 불안의 근원을 탐색한다.

 

3.1. ‘신흥 중산층’의 부상과 상속의 부담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 산업화, 도시화를 겪으며 계급 구조에 심대한 변화를 맞았다.5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전통적인 지주나 자산가와 구별되는 ‘신흥 중산층(new middle class)’의 등장이었다. 이들은 주로 대기업의 화이트칼라 사무직, 공무원,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상속받은 재산이 아닌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세대였다.5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이 계층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이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1세대였다.5

그들의 자녀인 MZ세대는 부모의 아비투스와 문화 자본을 물려받았지만, 저성장, 극심한 경쟁, 불안정한 노동 시장이라는 전혀 다른 경제 현실에 직면해 있다.12 1세대 부모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성공 신화를 썼다면, 2세대의 과제는 성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고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불안은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른 정상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에 대한 공포다.

 

3.2. ‘수저계급론’ 담론과 능력주의의 위기

 

이러한 2세대의 불안은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이라는 대중 담론 속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헬조선’은 현대 한국 사회가 희망 없는 지옥과 같다는 젊은 세대의 좌절감을 표현하는 용어이며 14, ‘수저계급론’은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경제적 배경(금수저, 흙수저)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15 이러한 담론은 더 이상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사회적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깊은 회의감을 반영한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피해 의식이 아니라, 통계적 현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여러 사회 조사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비율은 급격히 감소했으며,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응답자는 압도적으로 많다.17 특히 상속 및 증여 자산이 개인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 수십 년에 걸쳐 크게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는 ‘수저계급론’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현실임을 시사한다.16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MZ세대의 심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신봉했던 능력주의적 이상과 자신들이 체감하는 신(新)봉건주의적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끊임없는 비교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12 이러한 불안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와 같은 극단적인 재테크 열풍으로 이어지며, 뒤처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나타난다.18 심지어 결혼과 출산마저도 경제적 관점에서 계산되는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이 되고 있다.19

이 지점에서 취향의 과시적 노출은 ‘수저계급론’ 담론에 대한 정교한 반박 서사로 기능한다. ‘수저계급론’이 계급을 노골적인 부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면, 세련된 취향의 연출은 계급이 돈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즉 문화 자본과 내재된 심미안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는 상속된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적 시도다. 노골적으로 부를 과시하는 것은 ‘금수저’ 비판을 자초하는 저급한 행위로 간주된다. 따라서 2세대는 보다 미묘한 구별 짓기, 즉 문화 자본을 활용한 차별화를 시도한다.1 이들은 미니멀리즘, 인더스트리얼 시크 등 물질 세계로부터의 초연함을 상징하는 미학을 채택하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미학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다. 이 연기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경제 자본만 가진 ‘벼락부자’와 자신들을 구별 짓고, 둘째, 계급 결정론이라는 불편한 현실로부터 상징적인 거리를 확보하여, 자신들의 지위가 조야한 상속의 결과가 아니라 세련된 감수성의 문제인 것처럼 재구성한다.

 

IV. 탈맥락화된 버내큘러: 진정성의 제조

 

한국 중상류층 2세대가 구사하는 미학적 연출의 핵심 메커니즘은 토착적(vernacular) 스타일을 본래의 의미로부터 분리하여 전유하는 ‘탈맥락화(decontextualization)’ 과정에 있다. 이 장에서는 이 기제가 어떻게 진정성을 인위적으로 제조하고, 이를 통해 초현실적 취향을 구축하는지 분석한다.

 

4.1. 탈맥락화의 개념

 

탈맥락화란 하나의 사물, 실천, 혹은 미학을 그것이 탄생한 본래의 사회적, 역사적, 기능적 맥락에서 떼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20 이 행위는 대상이 지닌 고유한 의미를 박탈하고, 그 자리에 새롭고 때로는 상반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23 예를 들어, 노동, 산업, 생산의 맥락을 지녔던 낡은 공장의 벽돌 벽은 카페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여가, 소비, 미학적 배경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의미는 완전히 전복된다. 탈맥락화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키고, 지적 거리를 만들어내지만, 동시에 본질적인 의미의 상실과 오해를 유발할 위험을 내포한다.21

 

4.2. 버내큘러의 매력

 

버내큘러 건축과 디자인은 특정 지역의 필요, 재료, 기후, 문화에 뿌리를 두고, 전문 디자이너의 개입 없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유기적으로 발전한 양식을 지칭한다.24 버내큘러는 본질적으로 특정 맥락에 깊이 결속되어 있으며, 그 자체로 진정성(authenticity)의 한 형태를 대표한다. 그것은 기능이 미학에 우선하며, 지역 공동체의 삶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특징을 가진다.25 현대 한국 건축계에서도 한옥이나 제주의 고유한 재료와 같은 버내큘러 요소를 재해석하여 현대적인 ‘한국성(Koreanity)’을 표현하려는 시도들이 있어왔다.28 그러나 이는 본고에서 분석하는 상업적 전유와는 구별되는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4.3. 포스트식민주의적 함의

 

한국의 디자인과 도시 계획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모델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는 정체성의 위기라는 문제를 남겼다.31 ‘버내큘러’나 ‘인더스트리얼’ 미학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이러한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비서구적이고 ‘진정한’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종종 ‘브루클린’ 미학처럼 34 전 지구적으로 유통되는 탈맥락화된 진정성의 이미지를 수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이미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형태의 서구 수입품이다. 이는 포스트식민주의적 모방의 복잡한 역학을 드러낸다. 즉, 한 형태의 서구화를 거부하는 과정이 결국 더 미묘하고 세련된 형태의 또 다른 서구화를 포용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탈맥락화는 보드리야르적 시뮬라크르를 창조하는 필수적인 도구다. 원본 없는 복제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원본을 그 맥락으로부터 단절시켜야 한다. ‘스타일 없는’ 미학은 전적으로 이 과정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작동 논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진정성’과 ‘소박함’에 대한 취향을 과시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하지만 진정한 버내큘러적 진정성은 도시 중상류층에게는 낯설고 바람직하지 않은 비(非)엘리트적 맥락(예: 농가의 삶, 공장 노동자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거친 질감, 날것의 재료, 실용적인 형태와 같은 진정성의 기호들은 반드시 본래의 의미 세계로부터 추출되어 탈맥락화되어야 한다.21 이후 이 기호들은 고급 카페나 미니멀리즘 아파트와 같은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조립된다. 이 새로운 공간에서 기호들은 더 이상 노동이나 필요를 의미하지 않고, 소유자의 ‘소박함’을 선택할 줄 아는 세련된 취향을 의미하게 된다. 그 결과물은 완벽한 시뮬라크르다. 겉보기에는 ‘스타일 없고’ 진정성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공간을 진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의 완전한 부재를 은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초현실적 진정성이다.

 

V. 초현실의 사례 연구

 

본 장에서는 앞서 구축한 통합적 이론 틀을 적용하여 ‘스타일 없는 삶의 미화’ 현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세 가지 구체적인 영역을 분석한다. 성수동의 공간, 아트테크와 수집 문화, 그리고 ‘오늘의집’으로 대표되는 주거 미학은 각각 이 현상이 어떻게 도시 공간, 자본, 그리고 개인의 사적 영역을 재구성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5.1. 연출된 폐허: 성수동에서의 취향 무대화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며, 낡은 산업 유산이 트렌디한 문화 중심지로 재탄생한 성공 사례로 홍보된다.34 과거 정미소와 창고였던 대림창고와 같은 상징적인 공간들은 낡은 벽돌담과 철문을 그대로 보존한 ‘러스틱한 분위기’로 각광받으며, 이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36 이러한 공간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장소로 소비된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 이면에는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많은 방문객과 비평가들은 성수동을 ‘과대평가’되고 ‘피상적인’ 공간으로 묘사하며, “좋은 품질보다는 외양을 위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지적한다.34 이곳의 ‘힙함’은 유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을 모방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는 비판이다.34

이러한 미학적 변모의 이면에는 실제 산업의 소멸이라는 현실이 있다. 성수동을 지탱해온 수제화, 인쇄 등 도시형 제조업체들은 급등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역을 떠나고 있으며, 그들의 역사는 단지 미학적인 배경으로만 남게 되었다.41 이는 문화 자본이 경제적 축출을 선도하는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이다.35 성동구청은 붉은 벽돌 건물을 보존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이는 산업 유산의 ‘보존’이 아니라 그것의 ‘박제화’에 가깝다.44

결론적으로 성수동은 초현실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공간이다. 이 지역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 세트와 같다. ‘산업 유산’은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탈맥락화되어 상품화된다. 대림창고와 같은 카페를 방문하는 행위는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기호를 소비하는 행위다. 이는 그것이 모방하는 과거와 어떠한 진정한 연결도 요구하지 않는, 완벽한 취향의 연기라 할 수 있다.

 

5.2. 부적으로서의 사물: ‘아트테크’, 베어브릭, 그리고 프리즈 서울

 

MZ세대를 중심으로 ‘아트테크(Art-tech)’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예술 작품과 수집품을 순수한 미적 대상이 아닌, 대안적 투자 자산으로 간주하는 현상이다.45 이러한 경향은 미적 가치가 교환 가치로 수렴되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는 베어브릭(Bearbrick) 피규어다. 이 장난감은 예술, 하이패션, 스트리트웨어의 경계에 존재하며, 카우스(KAWS), 샤넬(Chanel), 그리고 한국 브랜드인 아더에러(ADER error) 등과 협업을 통해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49 베어브릭의 가치는 희소성과 기호 가치에 있으며, 이는 글로벌 트렌드에 정통함을 증명하는 객관화된 문화 자본으로 기능한다.51 베어브릭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행위는 자신의 취향과 경제력을 동시에 과시하는 세련된 방법이 된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의 등장은 한국에서 예술, 자본, 그리고 셀러브리티 문화의 결합을 가속화했다.53 프리즈 서울에 참석하고 이를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는 행위는 예술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무관하게, 문화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 집단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퍼포먼스가 되었다. 이는 예술을 소수 부유층을 위한 사치품이자 지위의 표식으로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며, 미술 시장의 상업주의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54

이러한 현상들은 취향이 어떻게 유형의 자산으로 전환되어 계급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베어브릭이나 프리즈 서울 방문 인증샷은 일종의 부적처럼 기능한다. 이는 ‘취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손에 잡히고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변환시켜, 자신의 문화적 지위를 물리적으로 증명하고 안정시키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이는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사용 가치나 상징 가치가 아닌 순수한 기호로서의 교환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8

 

5.3. 표준화된 안식처: ‘오늘의집’ 미학과 자아의 부재

 

‘오늘의집’과 같은 인테리어 플랫폼과 ‘랜선 집들이’ 콘텐츠의 확산은 한국, 특히 아파트 주거 공간의 획일화를 초래했다.57 화이트 또는 뉴트럴 톤의 색상, 미니멀한 가구, 무몰딩, 라인 조명과 같은 특정 스타일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수많은 집이 서로 유사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60

이러한 경향은 주거 공간의 ‘정체성 부재’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62 집은 더 이상 거주자의 삶과 개성을 반영하는 사적인 안식처가 아니라, 사진으로 찍혀 타인에게 전시되기 위해 디자인된 준(準)공적인 스튜디오가 되어간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트렌드가 실용성보다는 시각적 연출에만 치중하며, 피상적이고 쉽게 질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64

이러한 현상은 건축가 승효상이 주창하는 건축 철학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빈자의 미학’을 통해 건축이 화려한 외양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66 그에게 좋은 건축은 건물이 세워질 땅의 역사와 맥락, 즉 ‘터무니’를 존중하고, 거주자의 실제 삶을 반영하며, 공동체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이다.66 승효상의 철학은 이미지 중심의 탈맥락화된 인테리어 트렌드에 대한 강력한 비판적 준거를 제공한다.

‘오늘의집’ 미학은 ‘스타일 없는 삶의 미화’가 가장 내밀한 영역에서 구현된 궁극적인 형태다. 그것은 깨끗하고, 미니멀하며, ‘진정성 있어 보이는’ 공간을 제시하지만, 사실 이는 고도로 코드화되고 쉽게 복제 가능한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 이것은 이야기가 없는 집,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연기되는 삶을 위한 무대다. 현실에 대한 기만이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침투하여, 완벽하게 연출되었지만 텅 빈 이미지를 위해 자아를 지워버리는 현상인 것이다.

 

VI. 결론: ‘스타일 없는 스타일’의 폭정

 

본 보고서는 한국 중상류층 2세대 사이에서 나타나는 ‘스타일 없는 삶의 미화’가 단순한 미학적 유행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적 동력에 의해 추동되는 정교한 문화 전략임을 밝혔다. 능력주의가 붕괴된 사회에서 계급 재생산의 불안에 직면한 이들은, 탈맥락화된 버내큘러 기호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지위가 노력 없이 얻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정당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초현실적 취향을 연기한다.

이 미학은 새로운 형태의 상징 폭력으로 기능한다. 그것의 힘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스타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미니멀하고, 진정성 있으며, 가식 없는 선택으로 자신을 포장함으로써, 이 스타일은 스스로를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며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제시한다. 그 결과, 더 표현적이거나 개성적인 대안적 스타일들은 조잡하고, 저속하며, 취향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이는 진정한 계급이란 조용한 자신감과 절제된 연출, 즉 쉽게 구매하거나 학습할 수 없는 ‘게임의 감각’에 있다는 관념을 은밀하게 강화한다.

이 현상이 초래하는 결과는 다층적이다. 도시 공간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지역의 역사와 노동 계급의 기억이 지워지고, 문화 영역에서는 예술이 금융 상품으로 전락하며, 개인의 삶에서는 표준화된 인테리어를 통해 사적인 정체성이 소멸한다. 결국 이 현상은 만연한 불안과 끊임없는 자기 검열의 문화를 조장하며, 커피를 마시는 장소부터 집을 꾸미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측면을 계급 정체성을 연기하는 고도의 경쟁 무대로 변모시킨다. 궁극적인 기만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다. 초현실 속에서 연기와 연기자의 경계가 돌이킬 수 없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표 1: 미학적 패러다임 비교 분석

특징 초현실적 아비투스 (성수동/'오늘의집' 미학) 진정한 버내큘러 (승효상의 철학)
역사와의 관계 탈맥락화 및 미학화: 역사는 노동과 삶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제거된 시각적 질감이나 배경으로 소비됨.21 폐허는 연출된다. 통합 및 존중: 역사와 장소(터무니)는 디자인이 시작되어야 할 근본적인 맥락으로 간주됨.66
재료의 사용 기호 가치 우선: 재료는 ‘날것’이나 ‘소박함’을 상징하는 능력에 따라 선택되며, 종종 막대한 비용이 소요됨 (예: 광택 콘크리트, 노출 벽돌).38 사용 가치 우선: 재료는 지역적이고, 기능적이며, 본성에 충실하게 사용되어 거주자와 환경의 필요를 반영함.24
공간의 목적 연출과 소비: 공간은 소셜 미디어 자기표현과 미학적 경험 소비를 위한 무대(‘인스타핫플’)가 됨.34 삶의 경험과 공동체: 공간은 인간의 상호작용, 성찰, 그리고 공공성을 촉진하기 위해 설계된 ‘삶을 담는 그릇’임.67
‘스타일’의 개념 떠다니는 기표들의 큐레이션: ‘스타일’은 전 지구적으로 유통되는 트렌드의 조합이며, 개인적 서사가 부재한 원본 없는 복제물임 (보드리야르).9 삶의 유기적 표현: 스타일은 거주자의 삶, 장소의 특수성,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함.66
기저의 논리 현실의 기만: 소박함과 진정성의 외양은 복잡한 노동, 높은 비용, 그리고 지위에 대한 깊은 불안을 은폐함. 현실의 반영: 공간은 그것이 창조된 조건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정직하게 반영하며, 불완전함과 변화를 수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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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랜선 집들이, 계절을 담은 구축 아파트 인테리어 - 우먼센스,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www.womansens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702
  60. 아파트 인테리어 주의사항, 이 5가지는 절대 하지마세요 제발 - YouTube,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bwgFlSTK9BY
  61. 평생 유행타지 않는 인테리어☝️ 20년 지나도 질리지 않는 30평아파트인테리어 화이트 우드 아무거나 쓰면 망해요 ‍♀️ 대면형 주방 배치 꿀팁 거실 다운라이트 실링팬 추천 - YouTube,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cHSVv1tKv4I
  62. [논문]한국 주거공간의 정체성 변화에 관한 연구 : 아파트의 시각 정체성과 서사 정체성을 중심으로,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DIKO0015363080
  63. [Series] 한국건축가협회 도시재생세미나 '공공성' - SPACE(공간),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E4OA==
  64. 하.....인테리어...사기......#오늘의집 #대형플랫폼 - YouTube,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www.youtube.com/watch?v=Qi6mXbKZeUE
  65. 왜 아파트 인테리어가 이렇게 엉망진창일까? : r/germany - Reddit,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www.reddit.com/r/germany/comments/11fzyop/why_are_apartments_so_badly_decorated/?t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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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문화 인터뷰] 승효상 건축가, “교회는 신전 아닌 사람들이 경건함 갖도록 돕는 공간”, 10월 22, 2025에 액세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110500039

 

 

원글 : https://brunch.co.kr/@hwktable/17

서론: 왜 우리는 건축과 불화하는가

 

오늘날 건축계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분열이 있다. 이는 단순히 양식의 차이가 아니라, ‘건축(Architecture)’이라는 이상과 ‘건물’이라는 현실 사이의 깊은 골이다. 한편에는 서구에서 발원하여 수 세기에 걸쳐 정립된 자기참조적 지식 체계, 즉 ‘디서플린(Discipline)’으로서의 건축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는 우리 삶의 99%를 차지하지만 그 디서플린의 관심 밖에 놓인, 이름 없는 건물들의 방대한 현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디서플린의 언어로 훈련받았으나 건물의 현실에 복무해야 하는 ‘건축가’의 고뇌가 자리한다.

이러한 분열은 건축가와 대중 사이의 오랜 불화로 이어진다. 건축가는 자신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탓하고, 대중은 현실과 동떨어진 건축가의 권위주의에 괴리감을 느낀다. 본고는 이 구조적 문제를 해부하고, ‘건축’을 하나의 특정 문화 ‘장르’로 재정의함으로써 ‘건물’의 현실을 책임질 새로운 전문가의 등장을 촉구하고자 한다. 이는 단절이 아닌, 각자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 분리이자 새로운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제안이다.


1부. ‘건축’이라는 자율적 세계



1.1 디서플린의 기원: 형태를 향한 오랜 집착

 

서구 건축의 본질, 즉 디서플린은 태생적으로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의 관점보다 건물에 투영될 형태의 질서에 더 깊은 관심을 두어왔다.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건축을 사회적 선을 증진시키는 비-모방적 예술로 옹호했는데, 이는 건물이 직접적 유용성이 아닌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가 주는 질서를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건축가의 계획을 ‘형상인(formal cause)’으로 규정하며, 물질적 현실보다 추상적 아이디어의 우위를 공고히 했다.1 이러한 철학적 DNA는 건축이 사용자의 편의나 현실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인 형태 논리를 추구하는 오랜 역사의 토대가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경향은 ‘자율적 건축(Autonomous Architecture)’이라는 이름 아래 극단으로 치닫는다.2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으로 대표되는 이 흐름은 건축을 사회, 정치, 기능 등 모든 외부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담론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2 그의 악명 높은 ‘하우스 VI(House VI)’는 식탁을 기둥이 관통하고 부부의 침대를 유리 띠가 가로지르는 설계를 통해, 인간의 편의보다 디서플린의 내적 논리가 어떻게 우위에 서는지를 극적으로 증명했다.2 디서플린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증식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비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1.2 현대건축의 놀이: 알리바이와 결과물의 분리

 

오늘날 순수한 형식주의만으로는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의 ‘고급 건축’은 일종의 정교한 놀이, 즉 ‘그럴싸한 결과물(미학적 형태)’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그럴싸한 알리바이(개념적 서사)’를 구축하는 게임이 되었다. 여기서 핵심은 결과물과 알리바이가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않으며, 종종 그 연결고리는 사후에 구성되거나 ‘억지’스러운 지점이 발생한다.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이 역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4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날카로운 사선과 파편적인 조형 언어는 이 프로젝트 이전부터 존재해 온 형태적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4 여기에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 역사를 기념하는 프로그램이 이식되면서, 건축가의 기존 조형 언어는 강력한 역사적 알리바이를 획득했다. 리베스킨트는 깨진 다윗의 별, 쇤베르크의 미완성 오페라 등 다양한 외부의 서사를 설계의 근원으로 제시했지만5, 비평가들은 그의 ‘수다스러운 의도성(garrulous intentionality)’을 지적하며 형태와 서사 사이의 인위적인 결합에 의문을 제기했다.7 이는 건축가가 자신의 조형적 결과물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알리바이가 유일하거나 최적의 독해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알리바이는 디서플린의 자율적 세계와 대중의 이해 사이를 잇는 필연적인 소통 전략이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허구의 틈이 발생한다.


2부. ‘건축가’의 딜레마와 한국적 왜곡



2.1 디서플린의 역설

 

디서플린을 기반으로 한 건축 교육 시스템은 ‘건축가’에게 근본적인 역설을 안겨준다.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디서플린이라는 전문 언어를 습득하고 구사할 줄 알아야 기성 건축계와 소통하고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건축가는 디서플린 바깥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대다수 현실 공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건축가와 대중 사이의 깊은 골을 만든다. 학문적 이상으로 훈련받은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디자인 언어를 현실에 적용하려 하지만, 수요자들은 그것을 비싸고, 권위적이며, 실용적이지 않다고 느낀다.10 결국 건축가는 자신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탓하고, 대중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건축가를 외면한다.12 이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사이, 도시의 대부분을 채우는 공간들은 전문가의 책임 있는 개입 없이 처참한 수준으로 양산된다.

 

2.2 한국 건축계의 알리바이: ‘유사 인문학’과 노출 콘크리트

 

이러한 디서플린의 딜레마는 한국의 특수한 근대화 과정 속에서 더욱 기이한 형태로 왜곡되었다. 한국 기성 건축계는 서구 디서플린의 복잡한 조형 지식 체계 대신, ‘건축가는 작가’라는 권위적 태도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자리를 ‘윤리로 포장한 위선’, 즉 ‘유사 인문학’으로 채워 넣었다.

건축가 승효상으로 대표되는 ‘빈자의 미학’은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3 본래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담은 이 철학은, 현실에서는 특정 미학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도덕적 알리바이로 기능했다.14 건축가의 철학적 의도와 무관하게, ‘가난할 줄 아는 삶’이라는 윤리적 명제는 때로 사용자의 실질적인 편의나 욕구와 상충하는 디자인을 정당화하는 권위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이 알리바이는 ‘원재료 노출 마감의 육면체 조립’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단순화된 미학적 결과물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본래 저비용을 위해 사용되기도 했던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더 비싼 시공이 되는 역설 속에서, 이 미학은 복잡한 이론 없이도 건축가의 진지함과 권위를 손쉽게 드러내는 시각적 기호가 되었다. 결국 한국의 기성 건축계는 ‘윤리적 알리바이’와 ‘미니멀한 조형’이라는 편리한 패키지를 통해 디서플린의 권위를 수행했지만, 이는 대중과의 소통을 더욱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부. ‘건물’의 현실과 새로운 전문가의 필요성



3.1 건축의 바깥, 삶의 공간

 

‘건축(Architecture)’이 서구에서 발전한 특정 지식 체계, 즉 하나의 문화적 장르라고 규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건축의 바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태초에 한국에는 서구적 의미의 ‘건축’은 없었지만, 고유한 방식으로 공간을 다루는 지혜와 기술은 존재해왔다. 마찬가지로 현대 서울과 같은 도시 공간의 99%는 ‘건축’의 범주로 독해할 수 없는 자생적인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17

상가주택, 다세대주택, 이름 없는 근린생활시설 등. 이들은 도시의 중요한 구조를 이루고 대다수 시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지만, 건축 디서플린은 이들을 자신의 책임 영역으로 여기지 않는다.19 기껏해야 현상적 흥밋거리로 잠시 주목할 뿐이다. 이 거대한 영역은 주인의식을 가진 전문가 없이, 오직 시공의 논리만으로 방치되고 있다.

 

3.2 장르의 분리가 필요한 이유

 

문제는 이 두 영역이 서로 뒤엉켜 있다는 데 있다. 디서플린의 훈련을 받은 건축가들이 현실의 건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지만, ‘좋은 공간’에 대한 판단 잣대가 수요자와 너무나 다르다.10 건축가는 학문적 이상을 현실에 직역하려 하고, 수요자는 괴리감을 느낀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두 영역 모두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장르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는 두 영역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음악계에 고유한 문법과 평가 기준을 가진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 공존하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듯, 건축계에도 두 개의 전문 분야가 필요하다.

  • ‘건축’ 장르의 전문가 (건축가): 문화적, 예술적 행위로서의 건축에 순수하게 집중한다. 이들은 사회의 모든 공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디서플린의 심화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 ‘건물’ 장르의 전문가 (가칭: 공간조정가): 도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상적 건물의 질을 책임진다. 이들은 미학적 조형 실험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부동산 경제, 시공 기술, 지역의 법규와 생활 패턴 등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지식 체계를 바탕으로 훈련받아야 한다.

이러한 분리를 통해 ‘건축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더욱 깊이 파고들 수 있고, 새로운 ‘공간조정가’는 현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방대한 건물의 영역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두 전문가는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 도시 공간의 총체적인 질을 향상시키는 건강한 공생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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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김수영의 피플] '빈자의 미학' 건축철학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 영남일보,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91109.010220815350001
  15. [DBR/인터뷰]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貧者의 미학' - 동아일보,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140403/62220917/1
  16. 승효상 - 나무위키,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namu.wiki/w/%EC%8A%B9%ED%9A%A8%EC%83%81
  17. 조물주 위 건물주 되는 길 '상가주택 짓기' - 주간동아,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weekly.donga.com/3/all/11/1277399/1
  18. 작지만 위풍당당한 집… '홍은상가' 골목을 바꾸다 - 한국일보,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1521130005041
  19. 다이묘 차(大名茶) 차실(茶室)의 평면 구성 비교 분석, 10월 24, 2025에 액세스, https://kieae.kr/xml/30146/3014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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